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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몇 번인가 다뤘었다(혹시나 이곳을 종종 찾아와주시는 분이 있다면 이미 알 것이다). 


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도 있었고, '상실의 시대'와 '1Q84' 관련 포스팅을 했다. 동시에 읽고도 올리지 않은 것도 많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그렇고,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태엽 감는 새도 읽기만 했던 책이다. 부지런히 독후감을 쓰고 싶지만, 매일 일기도 쓰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키의 새로운 소설이 나오면 시간을 내어 읽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다음에 읽을 책이 안 잡힐때 다시 한 번 읽곤 한다. 이번에는 '태엽감는 새'도 그렇게 다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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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번역본


태엽감는 새는 어느 평범한 서른 살 남자의 아내가 홀연히 사라지면서 그가 겪는 일련의 사건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주인공은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만남과, 신비한 사건,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는다. 여기서 말한 그 새로운 사람들은, 다른 하루키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는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딘가 공허하고, 결핍되고 미치광이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캐릭터다. 또한 하루키 소설에서 반복되는 테마인 상실, 부재함에 더해서, 권력, 욕망, 양극성 등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는 일제가 2차 세계대전 중에 만주국과 인근 국가에 저지른 만행과 무자비함에 상처입은 주변국 사람들과 일본 소시민들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다. 하루키가 이웃 국가와의 역사를 인지하고 있음을 나타낸 작품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작품의 후반으로 가면 일본을 피해자로서 부각하는 장면들이 눈에 띄는데, 독자의 관점에 따라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겠다(나는 좀 아쉬웠다). 일본 우익은 이 정도 자국의 과거에 관한 언급에도 발끈하던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새누리당이 발끈하는 것과 같은 걸까.


덧싸개를 뺀 태엽감는 새. 디자인의 발전.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 대한 묘사는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작가의 의복과 배경, 음식, 음악 등에 대한 묘사는 텍스트를 그래픽으로 옮겨준다. 텍스트를 읽고 난 후 그래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읽음과 동시에 일어난다. 이것은 하루키라는 작가의 탁월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이점 때문에 시대를 잘만난 졸작이라는 평가를 작가 하루키는 받고 있기도 하다). 영화업계 사람들은 반드시 이 텍스트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나도 책을 읽는 도중에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이내 이걸 영화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하고 정신차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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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은 지난날 군대에서 읽었었는데, 도무지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내가 이걸 정말 읽었나 생각해봐야 했다. 독서노트를 보면 분명히 읽었다고 알려주고 있었지만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20대 초중반에 읽기엔 난해한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번에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하여 출판했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처음 읽는 책처럼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30대에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민음사의 태엽감는 새는 김난주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고, 예전 문학동네에서 4권으로 나눴던 것을 3권으로 구성했다. 이것이 오리지널 버전과 같을 것이다. 모던한 디자인도 예쁘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특히 번역의 오류는 거슬리는 수준으로, 꽤 많이 눈에 띄었다. 가령 경어체의 대화문이 갑자기 반말로 나온다거나, 맥락과 상관없는 이름이 튀어나온다던지 하는 오류, 또는 조사가 틀리는 오류 등이다(나같은 일본어 초심자의 눈에 들어올 정도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난주 이 분이 번역한 책을 몇 권인가 읽었었는데, 이런 오류는 처음 보는 수준이었고(나쁜 의미로), 출판사에서 마감일에 대한 심각한 푸시가 있었다던지, 아니면 하루키에게 원한이 있었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새 번역본은 책등에 일어 원문 제목을 적어놓았다. 작가가 전하는 의미를 최대한 살렸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번역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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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다른 저작인 1Q84가 비교적 대중적인 플롯을 보여주고 있는데 비해, 태엽감는 새는 소심한 난해함으로 가득차있다. 하루키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작품이지만, '햄버거와 콜라'같은 재미를 찾는다면 욕하면서 덮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의 리뷰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악평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고 싶다. 햄버거와 콜라보다는 클램차우더같은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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