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다뤘던 '지리의 힘'을 고를 때 파스칼 보나파스 1의 '지정학'이란 책을 옆에 두고 어느 것을 살지 고민했었다.
작은 집에 이케아 3단 책장 하나만 놓고 사는데 책은 꼭 책장에 꽂아야하는 인간이라서, 책 한 권도 신중하게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몇 달의 간격을 두고 보나파스의 지정학도 결국 책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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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다섯 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1부에선 지정학을 학문적으로 소개한다. 두 번째 부분에선 거시적 관점에서 보는 지정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3부에서는 특정 지역들이 처한 이슈들을 짚어본다. 이어지는 4장은 세계 패권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종장에서는 앞으로 주목해야 할 10가지 지정학적 이슈들을 질문의 형태로 독자에게 남기고 있다. '지리의 힘'은 이코노미스트를 읽는 기분이라면, 지정학은 잘 정돈된 참고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지정학의 학문적 배경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미국의 마한(Mahan)은 "(미국에 대한 공격을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적군의 무역선을 공격할 수 있는 해군력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해상 지배력을 무역과 경제적 경쟁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한편, 영국의 맥킨더(McKinder)는 대륙 지배력을 세계 패권 경쟁에 더 유리한 것으로 봤다. 섬나라인 영국에서 오히려 대륙 지배력을 강조했다는 게 의외였다. 어쩌면 미국과 영국 각자의 콤플렉스가 반영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예: 프랑스는 국가가 있고 난 뒤에 민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독일은 민족이 있고 국가가 생긴다는 쪽이다. 정답은 없다. 그저 두 민족국가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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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정상회담", "일본의 초계기 도발" (두둥!); 이 책의 띠지만 보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다. 띠지의 무게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에선 한반도를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핵무기가 북한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이기 때문이다. 기존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은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분투 중이지만 정작 자기들의 안보는 핵무기에 의존하고 있다(p.63). 이것이 보나파스가 말하는 핵무기의 모순인데, 특히 북한처럼 국제사회의 제재로 자원이 부족한 체제에서는 재래식무기(TNT-based 무기) 확보를 통한 군사력 대칭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국제사회가 핵을 가진 북한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트럼프 2의 말대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수많은 국제적 투자를 받고 발전할 수 있을까? 아니, 받으려고 할까?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북한과 관련된 방정식에 핵무기는 상수가 되었다. 이 핵무기를 등가로 제거해야 할 텐데,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이견이 지금 북한 문제의 브레이크로 작용하는 것 같다. 무작정 돈을 퍼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나파스는 북한이 개방을 통해 제한 없이 지원을 받으면 체제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북한은 체제보장을 외치나 보다(그래서, 연방제 하자니까?). 도대체 어느 선까지 보장해주길 바라는지,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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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가 저물면서 소련이 해체되고, 신자본주의의 이륙과 함께 경제학이 왕좌를 차지했었다. 지금, 지정학이 그 왕좌를 되찾아오는 듯이 보인다. 미국은 고립주의로 돌아가는 모습이고, 유럽은 분열과 함께 극우세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은 속으로 곪고 3 있으며, 중동 문제는 악화일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과 모순되는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지정학에서 힌트를 얻고자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떤 포인트들을 살펴보면 좋을지 간략하게 정리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히) 동북아시아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도 볼 수 있도록 생각을 환기해 줄 것이고, 왜 북핵 문제가 말처럼 간단히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말 이 나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도 역시, 옆에 지도나 지구본을 놓고 보면 이해가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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