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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이 추천받았던 책. 언젠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1년 넘게 묵은지처럼 넣어뒀었는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장바구니 속 몇 권과 함께 주문했다. 이런 시국에도 예전처럼 빨리 배송되는 것이 놀라웠고, 그것을 가능케 한 택배 여러분에게 감사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러시아 혁명에서 청산의 대상이 된 구세계의 인물(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이유로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에 종신 연금된 알렉산드로 로스토프 백작이다. 그리고 그의 연금 생활이 곧 이 소설이다. 주인공은 무척 운이 좋은 사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구세계 인물'들은 총살형에 처해진 게 보통이었지만 그는 과거, 혁명에 동조하는 시(詩)를 쓴 전력으로 죽음을 면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살아야 뭐라도 하는 것 아니겠나.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죽음은 면하지만, 종신 연금에 처해지면서 그때까지 머물던 스위트룸에서 하인들이 쓰던 다락방*으로 옮겨지고, 귀족으로서 누리던 모든 특혜를 빼앗긴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던 호칭 '백작'마저도 '불법'이 된다. 

 

*하인용 다락방이라고 하지만, 공간에 대한 묘사를 읽어보면 오늘날의 일반 객실 같다.

 

스토리는 허구지만,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은 실재한다


이 책은 두껍다. 주인공이 종신 연금 신세가 된 서른세 살부터, 노년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723 페이지. 역자의 글을 빼도 700 페이지가 넘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시기에 읽기 좋은 두께다. 솔직히 책의 초반은 지루했다고 고백한다. 처음 100페이지를 5일동안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서 패이스가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스토리 전개가 더욱 빨라지고, 나도 그 속에 푹 빠져들었었다. 마치 나이가 들 수록 더욱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처럼 말이다.  

 

무척 '재미있고, 영리하고, 낙관적인'*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 외에도, 수 많은 등장인물이 이 소설을 완성하고 있다. 호텔 식당의 지배인, 이발사, 주방장, 어느 날 만난 어린 소녀, 여배우, 소련 공산당 간부 등등. 모두 백작과 관계를 이루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이름과 관계를 잘 기억하면서 읽어야 한다. 나는 낯선 러시아 이름들을 기억하려고 책갈피에 그들의 이름과 나이를 적어놓고 읽었다. 

 

*빌 게이츠는 로스토프 백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또한,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20세기 초반 격변하는 러시아의 시대적 풍경도 인상깊다. 정치적 결정으로 조금씩 변하는 생활상,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에 대한 묘사,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일상의 모습들을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토리 속에서 시간은 티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흘러간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폴더폰을 찾아 볼 수 없게 된것처럼, 마차가 서 있던 호텔 앞은 기름을 먹는 택시의 자리가 된다.  

 

호텔 식당과 그 중간에 있는 분수대.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적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너무 많아서 적을 수 없었다. 또, 작은 디테일이 큰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스토리의 특성상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름다운 책이었다. 누군에게라도 추천 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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