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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기억과 사랑에 대한 판타지 소설.

‘나를 잊지 마’와 ‘남아 있는 나날’에 이어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을 집어 들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안에 파묻혀 지내면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었다. 2015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이시구로 작가가 쓴 판타지 소설로 유명하다. 새로운 장르지만, 기존 작가 특유의 맛은 그대로다. 이를테면 흰 우유처럼 밋밋한 같은 것 말이다. 초코우유같은 판타지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잘못된 선택이다. 음울하고, 답답한 스토리였다.

 

 

책의 배경와 정반대인 서울 풍경.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있다. 솔직히 말하면 첫 3부는 정말 재미없었다. 집중하기 힘들고 졸음이 와서 계속 읽기 힘들었다. 마지막 4부를 읽기 위해 인내하며 읽어내야 한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내가 이상한 걸까?(다른 사람들 얘기를 보면 딱히 그렇진 않다) 어쩌면 책에서 케리그의 숨결이 뿜어져 나왔던 걸지도 모른다. 작가가 독자의 기억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어쩌면 어색한 번역이 케리그의 숨결처럼 작용했을 수도 있다. 부디 '남아 있는 나날'의 번역가가 다시 번역해주길 바라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좋은 책이고, 추천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은,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생각나고, 마지막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들고, 그럼에도 텍스트가 품은 세계관과 비밀은 쉬이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로 점철된 스토리에 판타지로 포장된 '파묻힌 거인'. 그 바닥에 깔린 노부부의 사랑이 나에겐 떨림을 주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먹먹하기까지 했다. 조금 더 과장하면 눈물이 날뻔했다. 서로 얼마나 사랑하던, 둘 중에 하나는 먼저 물을 건너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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