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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가에서 자게 되었다. 내가 쓰던 방에서 내가 쓰던 이불을 덮었는데 이유모를 어색함이 느껴졌었다. 그 어색함 때문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나는 예전 그대로인 내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다(그중에 20권쯤은 아직도 못 읽은 채로 남아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여행이 취소되고, 가족들 만나기도 망설이고 있다는 걸 내 무의식이 알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 '노르웨이의 숲'의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가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책인데, 20 페이지쯤에 책갈피로 추정되는 메모지가 끼워져 있었다. 싱가포르 크라운 플라자 호텔의 문장이 새겨진 메모지로, 딱 한 번 그곳에 머물렀었고, 그 여행에서 나는 프로포즈를 했었다. 알고보니 나와 추억을 나눈 책이었다.

 

 

다시 책 얘기를 해본다. 이 에세이에서 하루키는 보스턴, 아이슬란드, 그리스 '미코노스'와 '스페체스' 섬, 뉴욕, 핀란드, 라오스, 이탈리아 등에서 겪은 일과 음식 등에 대한 단상을 가볍게 써내고 있다. 건조한 농담도 시도하는데 속으로 웃다가도 조금 씁슬해진다. 20대 초반이었다면 농담인지조차 몰랐을 텐데, 지금은 웃음까지 나오니 말이다. 10년, 20년 후에는 더 깊히 숨겨진 농담들을 알아보게 될까? 

 

여러 곳의 이야기 중에서, 나는 아이슬란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저자는 아이슬란드어로 번역된 두 번째 작품인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출판될 즈음 그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인구 36만 명*의 작은 나라에서 일본의 소설을 번역한다는 것이 신기한 한편, 도대체 돈 벌 생각은 있는 건가 싶었다. 아이슬란드 인구 대부분은 영어와 모국어인 아이슬란드어를 자연스레 구사하는 바이링구얼로, 사실상 영어책을 수입해 파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바람직'할 텐데 말이다. 저자는 아이슬란드인의 독서량이 많다는 것을 밝히며, 그것은 아마 밤이 긴 자연조건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쓰고 있다. 밤이 길든 짧든, 높은 독서량은 부럽다. 어떻게 보면 독서에 쓸만큼 시간이 여유롭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살이와 다르다.

 

이어서 아이슬란드 얘기 - 화산지대인 아이슬란드에는 간헐천이 많다고 한다. 하루키는 "온천 수증기를 국기 마크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온천이 많다"라고 말한다. 간헐천의 수온이 꽤 높은지, 그것을 이용하여 바나나도 생산된다고 한다. '블루 라군'이라는 온천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저자는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으로 가득했다"고 쓰고 있다. 이 부분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재작년쯤 아이슬란드로 휴가를 떠난 캐나다인 친구가 '온천에 갔더니 전부 한국 사람이더라'는 말을 해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2010년대의 한국 단체 관광객은 지구를 점령했었다.

 

* 위키피디아. 2020년 기준.

 

도무지 겉싸개를 찾을 수 없어서 인터넷서점에서 퍼왔다. 출처는 교보문고 웹사이트.

 

요즘 같이 집에 있으면서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이었다. 건조한 문장에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이곳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 책에서 기록한 장소들에 간다면 '아, 하루키가 왔다 간 곳이구나'라고 생각 날 것 같다.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절이 오길 바란다. 그때에도 다시 한국 단체 관광객이 지구를 점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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