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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표지를 넘기고 마주한 첫 장에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책. 그렇지만 어리둥절함과 지루함을 견디며 읽어나가면 어느새 그 내용에 몰입하여 많은 생각이 남는 책. 일본인 히로이 요시노리가 쓴 '포스트 자본주의'가 나에겐 그런 책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두께가 얇아서 눈에 들어온 책이었다. 얇으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꺼내 읽기 쉽기 때문이다.
첫 장은 강남역행 신분당선 열차 안에서 읽었다. 얇은 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첫 페이지에서 '전자두뇌'나 ;공각기동대'같은 소리를 하길래, '아, 이거 잘못 샀다'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누군지 모르니 그의 권위에 기대어 당황스러움을 허영심으로 달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은 지하철에서 내린 이후부터 잠시 방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몸이 아픈 동안에 읽을 책이 없어서 이 녀석을 다시 손에 들었고,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문단을 읽고 나서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보니 저자가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 이해가 됐다.

마치 자본주의를 당장에라도 엎어버릴 듯한 제목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없는 확대/성장의 시대에서 정체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체화란 것을 나는 '성장보다 분배와 커뮤니티정신, 그리고 오늘의 행복을 즐기는 사회로의 이행으로 이해했다. 

저자는 근대과학과 자본주의가 "한없는 '확대/성장'의 추구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라고 하면서, 그러한 방향성 추구가 반드시 인간에게 행복이나 정식적 충족을 가져다 주었는지 묻는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낙원의 패러독스를 겪고 있다고 한다. 온갖 생산물이 넘쳐나는 지금 이 '낙원'에는 오히려 만성적인 실업과 생산과잉으로 인간이 고통을 받고 있다. 누구를 위한 확대와 성장인지 알 수 없는, 이른바 과잉에 의란 빈곤에 시달리는 시대다. 자본주의는 근대과학과 손잡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이루었고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길을 열었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실업자가 된다.

어느순간부터 우리는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풍요로워졌다는 실감보다는 '바빠졌다'는 실감만 커지고" 있다는 말이 서글프게 와닿았다. 

요즘은 그러한 방향성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40대 이하 젊은 세대가 그런것 같은데, 그것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감을 목격하기도 한다. 무한 경쟁과 더욱 견고해지는 빈부격차 속에서 YOLO나 소확행 같은 용어들이 유행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외에도 경제의 지역내 순환에 대해서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는데, 정말 읽어볼만 하다.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다. 요즘 한국사회는 인구 감소로 소멸할지도 모르는 지방 도시들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하고 있다. 그러면서 해당 지방 정부는 그곳을 '살리겠다'면서 4차산업 업체를 유치한다. 그리고 서울에서나 필요할법한 아파트를 떡하니 지어놓는다. 누구를 살리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곳에는 4차 산업보다 작은 빵집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돈이 외부(대도시)로 빠져나가지 않고 그 지역에서 돌게 만드는게 진짜 '살리는 길'일 것이다.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친구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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