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였나, 어느 대형 서점에서 여느 때처럼 약속 시간을 기다리다가 매대에서 우연히 집어 든 '나를 보내지 마'라는 책이다. 뒷커버 소개글에 쓰여진 장기 이식, 클론처럼 SF스러운 단어들이 재밌게 보였다. 그래서 샀다.
몇 달 뒤, 어느 날 책장에 꽃혀진 채 잊혀진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재밌어서 단숨에 읽게 되었다. 소설의 플롯은 크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중문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복제 인간과 그들에 대한 딜레마가 주축을 이루는데, 이것과 유사한 세계관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서일지도 모른다. 영화 아일랜드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 플롯을 이끄는 작가의 기술이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 어느 평범한 여성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기증'과 '복제'와 같은 단어를 말한다. 마치 독자가 그들에 대해 익숙하고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부지불식간에. 너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단어에, 혹시나 내가 놓친 문장이나 페이지가 있는지 앞장을 들춰보게 만드는 것. 이야기 곳곳에 설치된 이러한 장치는 책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아무리 천천히 정독한다고 해도 분명 앞장을 들춰보게 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니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읽어서 다행인 것 같다. 권위에 기대지 않고, 더 내 마음대로 읽고, 생각할 수 있었다. 헐리우드 스타일의 복제인간 블록버스터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보내지 마'는 정말 그냥 '한 사람'의 담담한 자기 이야기에 가깝다고 말 해두고 싶다.
이 소설은 동명으로 영화화됐다고 한다. 가까운 주말에는 한 번 찾아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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