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으로 포스팅을 시작해 본다.
어떤 책을 읽은 후에 괘씸하단 생각이 든 적이 있는지?
몇 달 전,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경제 규칙 다시 쓰기'를 읽고나서 든 생각이 그것이다.. 괘씸함. 그 이유는 책의 제목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Rewriting the Rules of the American Economy' - 직역하면 미국 경제 규칙 다시 쓰기'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판 제목에서는 '미국'을 쏙 뺏다. 그 이유는 아마도 미국 경제라고 하면 독자층이 적어져 많이 못 팔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경제서가 재미 없고 잘 안 팔린다는 건 알고 있다). 제목에서 '미국'이 빠짐으로써 한국 사람은 이 책을 일반적인 경제서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사하다.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 경제 정책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논하고 있는 보고서 형식이다.
여하튼 출판사의 계략?에 넘어가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앞선 불만에도 불구하고 내용만큼은 미국에 살지 않아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IMF 사태 이후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편입된 한국 경제는 미국 사회와 비슷한 문제점을 꽤 자주 보여주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다. 보고서의 저자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 사회의 큰 문제점으로 회자되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 많은 지면을 쓰고 있다. 사실 그는 예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해왔다고 알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왜곡된 소득 분배가 경제적 양극화를 점점 심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비약적인 예로, 상위 1%의 사람들에게 하위 99%의 소득을 합친 것보다 높은 소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부자에게 유리한' 경제 정책(세법) 때문이며, 특히 금융부문의 임금이 '하는 일에 비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금융업계는 오늘날 기술 수준에 비해 뒤떨어진 제도를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과도한 금융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전후 미국 경제가 이루어낸 중산층 경제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점점 더 많은 부가 상위 1%에게 쏠리고 있다는 점은 2000년대부터 수면으로 떠 올랐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된 이유를 지나친 지대(rent) 추구와 그러한 행위에 대해 관대한 경제 정책에서 찾고 있다. 반대로 실질적 고용 창출을 일으킬 수 있는 산업 성장이나 고용을 위한 경제 정책은 점점 액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용에 대해서는 또, 물가 안정이 주요 목표가 되어버린 중앙은행이 오히려 고용률을 올릴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 왜곡된 특허와 저작권법은 원래 기대했던 이익보다 부작용이 더 커져서 기술적 배타성을 심화시켜 산업과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미국이 다른 나라와 열심히 체결하고 있는 FTA는 사실상 상품 교역의 확장보다 '규제 환경 조성'이 목적으로, 미국의 특허/저작권법과 같은 왜곡된 제도를 다른 나라에 이식하고 있다는 부분은 한국의 최근 이슈들이 떠올랐다.
책에서는 위의 이슈 말고도 다양한 분야의 경제 정책에 대해 논하고 있다. 성 평등이라던가, 이민자 문제, 주거의 문제 등등. 시간이 된다면 읽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내용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의도된 제목은 불만이다. 제목 붙이기에 신중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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