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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문외한인 남자. 하지만 작은 관심은 있어서 여기저기서 주어들은 얕은 지식.

몇 년 전의 일이다.
서구의 한 매체에서 "건물의 높이를 겨루는 경쟁은 구시대적인 유물이다" 며 초고층 빌딩 건설에 열을 내는 아시아의 '졸부국가'들을 조롱한 적이 있었다. 아마 이때가 타이베이101이 개장하고 버즈두바이의 건축이 한창일 시기였지...

바벨탑부터 버즈두바이까지 결국엔 '건물 높이 = 남근 크기'의 경쟁이라고 하니까, 아시아가 서양보다 커선 안된다는 그런 거? 어쨌든 그런 구식 초고층 건물은 여전히 곳곳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세우자고 공군기지를 공사한다고...)

여하튼 동아시아에서 제일 높다는 타이베이101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2010년 12월 중순.

시작은 신주에서.

일전에 소개했던 트레이니 하우스 내부. 나를 관리하는 신주 교통대학(交通)의 아이섹 스폰서가 관리유지비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산 속에서 근무하는 나로선 도시로 나오기 위한 전진기지 같은 존재. 

토요일, 이른 아침. 신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타이베이로 갔다.
학생요금 105원. 버스는 높고, 좌석은 비행기 퍼스트 정도로 넓다. 개인용 티비가 달려있다.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것. 등받이 조절이 전자버튼식이다. 역시 전자의 나라 타이완. 만세!



타이베이. 왠만한 구경거리는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도시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일단 타이베이역을 나선 우리. 도시는 작을 지 몰라도, 여기, 타이베이 역은 크다. 너무, 과하게, 오버스럽게 크다. 시외버스터미널, 일반기차, 고속열차, 지하철(MRT)의 교차점으로 베이징역이나 도쿄역보다 더 거대하다. 이런 이유로 서로 다른 곳에서 헤매다가 약속시간보다 늦게 조우.


일단 답답한 지하도를 나와 밖으로. 

굶주린 배를 이끌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호텔이라는 간판 발견. 한국 모텔 정도 수준일까? 일단 외부는 의심스럽다.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한자일색의 메뉴판에 투항하고 세븐일레븐으로 돌진. 결국 공장에서 나온 커피우유와 삼각김밥 등을 샀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중국어 음식 이름이 생소했었다. 더불어 세븐일레븐의 진미도 뭔지 몰랐던 타이완 초입기. 

타이완은 가로변에 쓰레기통이 없다. 예산부족인지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없다. 여기저기 쓰레기통이 많은 뉴질랜드와 달리 불편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길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다. 길가에 밴치도 없는 편이라, 엉덩이를 붙히고 삼각김밥과 우유를 먹으려는 작은 희망 실현을 위해 공원 같아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공원에 들어와 한 돌밴치에 앉았다. "왠 공원이 넓네"라며 김밥을 뜯어먹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여기가 이 날 가려고 했던 2.28 평화공원이었다. 이렇게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볼거리를 다 돌아볼 수 있는 타이베이 시내. 


서울 인구 1/5 정도의 도시. 하지만 서울엔 이 정도 규모의 공원조차 없는 거 같아 좀 아쉽고, 부럽다. 서울 - 한국은 공원이라는, 혹은 광장이라는 미명 아래 온통 시멘트... 어째선지 모든 것이 거꾸로 가는 한국.


마침 타이완 전국 쌀 전시회 같은게 열리고 있었다. 무대에는 공연도 한창이었는데, 아마 타이완 쌀아가씨 같은 사람이었던 거 같다. 사진에 보이다시피 방문객은 거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여기에 맞춰 쌀아가씨도 전통가요.

그 길로 더 걸어가다 도착한 중정기념당. 타이완 제 2의 국부 장개석 기념당. 장개석의 이름은 중정. 개석은 그의 자다.

1945년,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중국에는 장개석을 총통으로 한 공화국이 수립된다. 하지만 이내 모택동 공산당과 내전을 치뤄 참패. 이에 장개석과 국민당은 타이완섬으로 도망... 하지만 장개석과 국민당은 대륙을 탈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찾아온 기회: 한국전쟁.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실패. 이후 미국에 대륙 공격을 프로포즈 하지만 미국이 거부. 그렇게 타이완은 타이완으로 굳어져 왔다. 좋은 사람도 아니지만, 이 사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온전히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이완 여기저기에서 장개석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시골의 공원에 가도 하나 쯤은 꼭 있다. 의심스러워진다. 역시 반공의 최후는 파시즘인가. 한국도 자칫하면 이럴 뻔 했지... 미스터 박.


기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안은 전부 전시관이었다. 장개석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곳. 사진은 물론, 그가 타던 미국산 캐딜락.. 엄청 컸다. 히스토리 오브 반공... 아, 그가 죽은 시간에 멈춰버린 시계도 있었다.


또, 여러 나라에서 받은 훈장들.

눈에 익은 태극이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수여한 것. 1953년에!!
큰 감흥은 없었다.


그렇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타이완과 한국은 한때 형제같은 나라였다고. 반공의 의미에서 그럴만도 하다.
어쨌든 90년대 초 중국과 손 잡은 한국. 타이완에서는 한국을 배신자라며 대사관마저 쫓아내버린다.
대사관은 지금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정적인 물체들을 구경하는 건 금방 질리는 사람. 천장이 높고, 거기엔 대단히 공 들였을 것 같은 조각이 있거나 해, 하지만 3초만에 무브 온.


나오는 길에 우체국이 있어서 기념품 집에서 산 엽서를 하나 써 한국집에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약간 지루함이 엄습하던 찰나에 나를 위한 특별 풍경. 교통사고. 어렸을 적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사고 풍경. 교통경찰 출동. 땅바닥에 열심히 분빌칠을 하던 아저씨.


길 가다 발견한 가판에서 동생에게 줄 선물을 사거나 했다. 온갖 그림이 그려진 '이름표 스티커'를 대량으로 뽑아주는 서비스.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렴하고, 한국에서 아직까지 못 봤단 점에서 선택. 한글도 물론 지원.


보험투세계. 이때는 그냥 시먼딩 풍경을 찍어 봤었다. 
타이완식 한자가 조금씩 보이는 이 시점. 여기는 콘돔세계. (방문기는 다음에)

타이완 장인은 시먼딩에 있었다.
길가에서 초상화를 재빠르게 그려주는 화가님들은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이건, 뉴질랜드건, 어디건.
하지만 이 장인. 앉아 있는 사람을 피규어로 만들어준다. 

글만 가지고 표현하기는 쉽지않다. 어느정도냐면 아디다스 운동화의 삼선까지 세겨준다. 게다가 빠르다.

다음에 만들어보기로 하고 무브 온.


화장실을 쓰기위해 들어간 백화점에서 우연히 여성화장품점에서 사인회 중이던 타이완 연예인을 보기도 했다. 나중에 찾아보면 꽤나 유명한 남자다. 이름은 발음이 좀 어려워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현지 연예인들을 곧 잘 보곤 했다. 싱가폴에서도 떼지어 뛰어가는 소년소녀들을 따라갔다가 연예인을 본다던지, 홍콩에서도 한가로이 쇼핑하던 연예인. 한국에서만 빼고.

황금색 지붕이 거대한 이 곳은 국부기념관. 타이완의 국부라면 바로 쑨원(孫文)이다. 이 사람이라면 중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인물. (사실 난 타이완에 오기 전까지 이 사람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공산당 모택동과 국민당 장개석 모두 그의 철학을 따르고 있다, 바로 삼민주의 (민권, 민족, 민생). 한국도 도움을 받았는데, 사실 장개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은 애초에 쑨원의 지시로 시작됐다고 한다. 쑨원은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쑨원의 동상은 좀 더 푸근한 이미지로 인민에게 어필한다. 어쨌든 여기에 옴으로써 타이베이101에 한걸음 가까워졌었다.



국부기념관을 나와 길을 걷다 하늘을 봤다. 거의 보름달이 되어가는 달이 보였다. 왜 이 시점에 1Q84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문득 지금 나는 현실세계에 있구나'라는 것을 확인했다. 소심한 안도와 함께.


표지판. New York New York. 뭘까, 아직도 모르겠다. 혹시 아는 분 계시면 제보해 주세요.


그렇게 한 10분 정도를 걷고 도착했다. 

타이베이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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