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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주변에서 책 추천을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게 추천 받은 책 중 어디에 적어 놓지 않으면 거의 다 잊어버리고 마는데, 그런 기억의 유효기간을 거스르는 책들이 가끔 있다. 그런 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추천 받은 책'으로써 항상 두 권을 잊지않고 기억해왔다. 한 권은 '쾌변천국', 다른 하나는 '장미의 이름'이다'. 애석하게도 '쾌변천국'은 절판된 것으로 보인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돌아다녀봐도 찾을 수 없었다.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 똥이야기가 걸작이라던데... 죽기 전에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후자인 '장미의 이름'은, 이탈이아의 천재 '움베르토 에코'의 1980년 작품이다. 또 이것은 그의 소설 데뷔작이기도 하다. 나는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소설을 완독하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책의 내용이 상상했던 것보다 방대했고, 작가가 심어놓은 여러가지 장치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한 주석을 꼼꼼히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열린책들版 장미의 이름 1권   열린책들版 장미의 이름 2권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이다.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인 수도사 '윌리엄'과 그의 제자 '아드소'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이다. 사건의 수도원은 세상의 축소판으로서 등장한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중세시대의 혼돈을 나타낸다. 또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묵시록(요한계시록)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지도층이 종말론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하는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예수가 죽으면서 '종교지도층과 신도들을 나누던 휘장이 갈라졌던' 것처럼, 저 수도원의 '권위'가 무너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것을 단지 소설 속 중세시대의 사건으로 끝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혼돈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독자도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1986년작 동명의 영화. 숀코너리가 영국인 수도사 '윌리엄'을 맡았다. 해리포터보다 재밌게 봤다.

 

앞서 이 소설은 주석때문에 완독까지 오래 걸렸다고했는데, 추리소설에 웬 주석이냐니. 사실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 언어학자, 미학자, 역사학자와 철학자라는 평생 하나 달기도 힘든 타이틀을 여럿 갖고 있다 (게다가 9개 국어에 능하다니까 천재임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이 소설 속에 자신이 알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농축시켜 놓았으니, 나는 주석이 절실했다. 아마 그 분야들에 정통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과속방지턱을 만난 자동차처럼 중간중간 멈칫멈칫 해야했다. 책의 번역이 거슬리진 않았던 것 같다. 한편, 텍스트를 통한 장소, 인물, 환경의 묘사가 뛰어났다. 특히 소설 전반에 걸쳐 수도원이라는 장소를 묘사하는데, 사진을 놓고 설명을 듣는 기분이었다. 

 

"Mors est quies viatoris, finis est omnis laboris" (죽음은 나그네의 휴식, 모든 수고의 끝). 책의 마지막 즈음에 건진 쿠오트. 다른 좋은 문장도 물론 많다.

 

같은 작가의 '프라하의 묘지'라는 책이 몇 년 전에 출간되었다. 꼭 읽고 싶고, 서점 장바구니에 항상 들어있다. 정가제 시행 전에 사놓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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