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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난 이런 책이 좋아요"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장르가 있으니, 그것은 음식책이다. 일명 푸드에세이. 야설도 아닌데 왜 말을 못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리책 보는 것을 특이취향이라고 생각해버려도 할 말은 없다. 혹, 요식업 업종에 종사하지도 않으면서 왜 읽냐고 물어본다면 순수한 흥미라고 생각해주시길 -pure interest.

 

오랜만에 '좋은' 푸드에세이를 한 권 읽었다. 그것은 박찬일 셰프가 쓴 '보통날의 파스타'란 제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이탈리아에서 겪은 파스타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로 점철되어 있다. '기승전파스타'. 곳곳에 파스타에 대한 새로운 지식, 잘못된 정보,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다른 나라 것의 비교 등등등 -읽고 나면 괜히 똑똑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의 표지. 페투치니 사이로 비치는 노인의 사진이 노스텔지아를 불러일으킨다. 누구라도 파스타와 관련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내 추억은 아래에다가 적어봤다. 푸드에세이답게 활자 사이사이에 사진들이 실려 있고, 레시피도 충실히 담겨있다. 셰프의 비법은 빠진 레시피겠지만, 그대로 따라하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다.

 

저자인 박찬일 셰프는 줄곧 이탈리아 요리는 식자재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점에 대해 적극 동의한다. 서울에서 이른바 '스타셰프'들의 식당에서도 이 간단한 룰이 너무나도 간과되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특히 이태원쪽의 모 식당은 최악의 파스타를 경험 시켜주었다) 그런 와중에 내 편이 되어준 책을 만나서 기뻤다.

 

 

책 중간중간에 이탈리아에서 찍은 사진들이 삽입되어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역동적인 일상을 담아낸 사진들은 활자를 현장에 던져놓는다. 위의 캡쳐된 페이지는 지중해에서 잡아올린 참치(청새치?)를 해체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다. 지중해 참치는 그쪽 사람들에게 지난 수 백 수 천년 동안 주요한 식재료였지만, 근래에는 남획으로 멸종될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우리 세대가 지중해 참치를 맛볼 수 있는 마지막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의 우울한 얘기는 줄이고 다시 책을 보면, 중간중간 이런식으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사진만 봐도 무슨 맛일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물론 직접 먹으면 더 맛있는 오감만족이 일어나겠지만, 일단은 아쉬우니까 눈으로 보고 입에서 상상해본다.


 

보통날의 파스타 - 파스타를 좋아하고, 푸드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이미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책 제목과 같이, 한때 나에게도 파스타가 보통날의 음식이었다. 혼자살던 시절에 수퍼마켓에서 세일하는 스파게티나 펜네는 제일 싼 식재료 중 하나였고, 소스는 올리브오일이나 세일하는 토마토 소스. 정 없으면 케찹이나 간장에도 비벼먹었었다. 그와 동시에 파스타는 나에게 사랑의 음식이자 화해의 음식이기도 했다. 아주 가까우면서도 특별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중요한 '식사자리'가 생기면,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골라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본다. 항상 하나는 이탈리안 다른 것은 다른나라요리다. 2번의 옵션으로 일식, 멕시칸, 타이, 한식 등을 불러봤는데, 그들이 정말 이탈리안을 싫어하는 건지 어떤지, 여태까지 이탈리안을 고른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만남 자리에서 이탈리안이 '안전빵'으로 알려저서, 그 '안전빵'을 선택한다면 고리타분한 인간으로 여겨질거라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항상 다른 것이 선택되는 것일지도.

 

한편, 나는 이탈리안이 선택되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파스타를 선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왠지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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