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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 안녕.이라고 생각한다. TV 뉴스는 물론, 인터넷 여기저기에 널린 뉴스도 보고싶지 않다. 이렇게 뉴스에 질려버리게 된 계기는 군대에서였다. 나는 근무내내 YTN을 끼고 있어야 했는데, 그래서 질려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YTN은 하루 24시간을 자로 잰 듯 10등분으로 나누고, 매 시간마다 자막 하나 바뀌지 않은채 똑같은 보도를 계속계속 반복한다. 달라지는 건 앵커의 얼굴 뿐이다.

 

    

   이 세상이 너무 많은 뉴스 속에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 너무 많은 뉴스에 파묻힌 세상이 안쓰럽게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세상이 뉴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가라앉지는 않을지..? 이것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이 세상의 '네트워크화'된 나라들은 어느 곳이라도 넘쳐나는 뉴스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쓰레기같은 뉴스를 덜어내어 우리 몸을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해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신작 - '뉴스의 시대'는 이런 시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이 책의 주요 논제는 "이상적인 뉴스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뉴스가 충족시켜야 하는 심오한 욕구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뉴스는 가장 긍정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가?"이다.

  

빨간색으로 이름 쓰면 죽는다며.

  

   이 책도 뉴스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전무후무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뉴스를 지나치게 생산하여 -꽉막힌 변기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뉴스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바보'로 만든다는 것이다. (분노의 댓글을 다는 정신지체자들도 매일매일 양산해낸다)


"한때 종교가 가졌던 것과 동일한 특권적 지위를 이제 뉴스가 점유한다 (헤겔) ...뉴스와 마찬가지로 종교는 우리에게 날마다 중요한 일들을 말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뉴스와 달리)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리란 걸 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떠먹이는 ...반복과 연습이 신앙의 교육법(인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넘쳐나는 뉴스들 하나하나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말들을 한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읽고 이해하는 법은 가르치면서, 왜 뉴스를 보고 이해하는 법에 대해선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 '뉴스는 정말 인류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음모론도 그런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 책은 200 페이지 정도에 걸쳐 정치/해외/경제/셀러브리티/재난/소비자정보 등 여섯 가지 뉴스 분야가 보여주는 문제점과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논해보고 있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앞으로 뉴스가 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있다.

 

   뉴스를 접하는 독자에게 작가가 강조하는 한 가지는 그 뉴스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가의 문제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극소수에게만 존엄과 호의가 주어진다면 평범한 존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더욱 거세진다... ...'셀러브리티 문화'를 콕 집어 젊은이들의 탓이라며 비난하는 사람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셀러브리티 문화'에 대한 것만도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40~50대 이상되는 이른바 '어른' 집단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20대에 대해 '패기가 없다', '무기력 하다'란 말을 마구 쏟아낸다. 지금의 20대가 예전 영광스런 민주화 운동같은 과격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 확실히 오늘날 20대는 흥미진진하고 스릴있는 뉴스 화면을 만들지 않고 있다. 정작 그 어른이란 사람들은 20대를 무슨 데모하는 용병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적 문제의 본질은 20대의 멘탈보다 그 어른들의 ROTTEN 정신머리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작가는 책의 결론 부분에 이런 말을 한다. 인류는 여지껏 '딱히 변화가 없던 사회에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중대한 것이었고, 인류는 새로움에 대해 약해지는 '인지적 취약성'을 갖게 되었다. 즉, 우리는 새로운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즉각 가정해버리는 취약성을 기본탑재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가 지배하는 시대에 온전한 판단력 유지를 위해 새로움과 중요함은 궁극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한 인간이 건강히 살기 위해 이것저것 골고루 먹는다. 그런데 만약  그/그녀가 너무 많이 먹어버린다면 배가 터져 죽어버리고 말것이다. 결국 무작정 많이 먹는 것보다, 음식의 영양성분을 신경써써 골고루 적당량을 먹는 게 중요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뉴스기사의 '영양성분'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마구 먹다간 배가 터져 죽어버릴 것이다; 물론 너무 안먹어도 굶어 죽는다는 딜레마가 있지만 말이다.

 

   '뉴스의 시대'는 넘쳐나는 뉴스를 적당량을 덜어내 골고루 접하여 '건강한'인간이 되라는 숙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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