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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마리 빵

 

 여기 이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내가 항상 먹고 싶은 ''과 항상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경제'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담긴 제목만 믿고 사서 읽었다. 누구의 추천도 없었고, 이전에 들어 본 적도 없는 책이었다. 이렇게 골랐지만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리고선 '참 좋은 책이다'란 생각을 했다 - 다 읽고나니 베스트셀러가 되어있었다.

 


 

 이 책은 일본인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타루마리(タルマーリー)'라는 빵집을 경영하며 '부패하는 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책의 모티브는 저자의 부친이 그에게 '할 일 없을 때 읽으라고 추천해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제빵공정, 그중에서도 균(菌)에 의한 발효 과정이다. 그는 자본론의 내용을 빵 반죽의 발효에 빗대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개선책들을 논의하고 있다. 처음부터 230페이지 정도 되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이다 -"우리는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춘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 중이다."

 

 

 저자는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빵만들기를 배웠다. 뜬금없이 빵만들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의 원래 직장이었던 '유기농 농산물' 회사에서 목격한 불합리한 일들, 그리고 쉬는 기간에 아버지로부터 권유받은 마르크스 자본론을 접하면서부터 제빵에 길로 들어섰다. 그는 개개인이 규모가 작을지라도 자기의 생산수단을 갖길 바랐고, 그 맥락에서, 작가는 제빵의 길을 가게되었다. 그에게 빵과 자본론은 때려야 땔 수 없는 공동 운명체(?)이다.

 


 

 시골빵집 이야기는 자본론 중에서 19세기 런던의 빵집과 21세기 도쿄의 빵집 이야기를 비교하며 시작된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노동력 착취와 빵집 노동자의 빈곤 문제가 21세기 도쿄의 빵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노동이 상품화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빵집주인'의 노동력 착취가 부당해 보이지만 임금에 대한 노동력의 교환이므로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피력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부패하지 않는 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균의 작용을 통해 부패하여 자연속으로 편입되는 것인데, 돈도 마찬가지로 쓰면 소모되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에서는 돈이 물질적인 절대량을 넘어 허공에서까지 무한증식이 가능해지면서 온갖 부작용을 야기한다 하며,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도 그런 이유로 터졌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기만의 생산수단을 갖으라고 한다. 프랜차이즈처럼 거대 자본에 종속된 것이 아닌 진짜 소상공인이 되라고 말이다.

 

일본 오카야마현 가쓰야마(岡山県 勝山)에 있는 시골빵집-[타루마리].

 

 

  그는 타루마리에서 다음 네 가지 방법을 통해 '부패하는 경제'를 시도해보고 있다.

 

 1. 발효 : "천연균은 살아가는 힘이 없는 것들을 부패시킨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생명의 활동을 잘 따른 음식을 선별하고 자연의 힘으로 억세게 살아가는 것들만 발효시킨다". 발효와 부패는 사실 균에 의해 일어나는 같은 작용이지만, 사람에게 유익하면 발효, 반대일 때 부패라고 한다. 그는 거대자본의 논리로 사람보다 이윤에 집학하는 식재료를 배제하고, '부패하는 식재료'들을 사용하여 '발효'를 거쳐 진짜 빵을 만들고 있다. 이스트 대신 천연 효모, 천연 누룩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 한 권보다 재밌다.

 

 

 2. 순환 :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순환'이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지역사회의 순환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그가 시판되는 이스트 대신 천연효모나 누룩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스트는 빵을 부풀리는 기능에 최적화된 균만 선택 배양된 것인데, 그 제조과정에서 배양액의 영양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첨가물을 마구 집어 넣거나 유전자조작까지 일어난다고 한다. 이는 곧 자연의 순리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지역사회의 순환은 식재료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하거나 주변의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 등이다.

 

 3. 이윤 남기지 않기 :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타루마리의 빵은 일반 빵에 비해 비싸다고 한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나 제빵과정을 보면 충분히 납득된다. 그리고 저자 본인도 정당한 가격을 책정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다른 업종에 비해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나는 빵집의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 직원들을 착취하게 되는 길을 차단하였다. 예를 들어 타루마리의 엄청난!! 휴무일이 있다 -일주일에 3일 휴무, 일년에 한 달은 휴가. 이렇게 긴 휴무일을 정한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책에 설명되었다. 

 

 

 4. 빵과 사람 키우기 : 저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빵을 개발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새로운 균을 찾아서 더 맛있고 건강한 빵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사람 키우기는 먼저, 자신의 제빵과 여러가지 균의 배양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에게 유익한 균들, 특히 유산균, 누룩균 등을 자주 언급한다. 그 자신도 힘들게 터득한 그런 균의 배양법을 계속 이어줄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녀 키우기에 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은 장래에 빵을 만들게 될지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집 안에 풍기는 빵냄새와 빵공방에서의 일상 등을 기억하며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또 잊지 않아주었으면 한다고 한다. 도시의 아이들이 아침에 출근하고 밤에 돌아오는 부모에게서 배우기 힘들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

 

 


  

 여기에 정리하지 못한 내용도 많다. 공간이 없어서 쓰지 못한 것이다. 가령 밀가루 알러지의 원인이 밀가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입산 밀가루에 쓰이는 농약, 그중에서도 수출용에 쓰이는 포스트-하비스트 농약에 대한 알러지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저자가 헝가리에 간 부분, 그리고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어난 후쿠시마 사태 같은 것이다. 읽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시길.
 

 마지막까지 참 담백하고 기분 좋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와타나베 이타루'씨와 가족들, 그리고 시골빵집 타루마리를 응원하고 싶다. 다음 여행지는 일본이고, 다루마리를 찾아 산속까지 찾아가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춘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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