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먼 사이라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 같은 사이로 비교되기도 한다. 내 생각엔 더 복잡한 관계인 것 같다(부정적으로). 지금은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로 한일 간 여론이 악화하고, 그러한 감정이 외교분야까지 영향을 끼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악화된 채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점점 바닥을 향해가던 양국 관계에 대해,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권 후기에 현상 개선을 위해 언론을 통한 여론 조성에 나섰고, 윤석열 정권은 그러한 트렌드를 잇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현지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요즘, 교보문고에서 "한일관계사(부제: 한일 대립은 언제 끝날 것인가 과연 관계 개선은 가능할까)"라는 얇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은 '기미야 다다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쓴 것으로, 한일 관계를 근대부터 최근까지 역사적 사건들과, 생각의 차이 등이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다. 한일 관계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한국 매체를 통해 접해왔는데 이 책은 일본인 학자가 쓴 것으로, 일본은 어떤 생각인지 알고 싶어졌다.


저자는 대칭성비대칭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일의 역사, 정치, 경제 관계를 해석하고 있다. 역사 부분에선 일본제국의 조선 식민지화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양국의 관계가 궁극적인 비대칭화되었다고 쓰고 있는데, 그는 책의 앞부분에 1875년부터 1945년까지의 양국의 역사를 각각의 관점에서 살펴보며, "역사적 괴리"란 표현을 쓰고 있다. 1990년대를 거치며 한일 간 경제적 비대칭성은 대칭성에 가까워졌는데, 아직 역사의 비대칭성이 양국 관계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그의 다른 자료를 더 봐야 잘 알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인 1945년 한반도 독립부터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기본협정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눈길이 간다.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은 일본에 매우 적대적이었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이승만은 일본인이 한국에 '한 발자국도 못 들어오게 했다'라고 하는데 사실이었나 보다. 이후 나타난 박정희에 대해선 한일기본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어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한다. 이 한일협정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평가가 평행을 달린다. 저자는 박정희가 일본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을 숙지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극일을 이루려 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그 근거로 이순신 동상을 세우는 등의 이벤트가 포함된 반일 내셔널리즘을 들고있다.

전두환에 대해선 그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한일의 지지로 극복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19년생으로 일제의 교육을 받은 박정희와 달리, 1931년생인 전두환은 이승만 치하에서 한글교육을 받은 자로, 일본과의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지속 개선한 이유는 한반도 미군 철수 및 소련 해체 등으로 급변하는 안보 환경과 경제 분야에 대한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편으론, 박정희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일본에 대해 한국 대중이 갖고 있는 부정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발전한 것은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상 그러한 여론을 억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러한 역사의 부작용이 후대에 위안부, 독도 분쟁 등으로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쉬움을 넘어선, 특히 한국의 피해자에게 일어난 비극이다.


이어서 저자는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이뤄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그의 지적은 흥미로운데, 김대중 정권은 아무래도 한반도에 처음 나타난 진보 자유주의 정권이었으니, 여태까지 권위주의 시스템 및 보수 정권만 상대해오던 일본 입장에서는 처음 맞는 상대였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걱정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 갖고 있던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와 그의 배경 등으로 그는 일본에 대해 유독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하며, 그것으로 한일 관계가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나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일본문화 전면 개방이라는 사건이 있었고, 이내 TV에서 세일러문이 방영됐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보면 한국 외교에서 가장 큰 성과를 이뤘던 시기는 김대중 정권 때 같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일본은 한일 관계가 더 개선(일본에 우호적) 될 것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퇴보하였다고 평가하며, 그는 그 원인으로, 보수정권에는 '친일파'로 분류된 인사들이 그러한 인식을 반전시키기 위해 더욱 반일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도 분명 천차만별일 것이다. 굳이 따지면 비판이 더 클 것도 같다. 한일 문제는 어떻게 풀어내도 욕먹기 좋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한국의 입장, 한국의 시선으로만 바라봤던 한일 문제, 나아가 동북아시아 + 미국의 관계를 상대편의 입장에서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이 책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어떻게 그 점을 이용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을 거두고, 선진국 대 선진국으로 대칭하는 입장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