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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 만에 올리는 책로그.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기억이 나는 것도 있고, 나지 않는 것도 있다. 양서도 있고, 쓰레기도 있었다.
 
몇 권은 책로그로 올려보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코로나를 핑계로 머리도 손가락도 게을러졌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런 시기에도 임팩트가 있었던 책이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2019년 4월 30일에 저문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돌아보는 책이다. 저자인 요시미 슌야(吉見俊哉) 도쿄대 교수는 자신의 저작이 일본 현대사의 '실패 박물관'임을 자처하며, 자기 책을 'TV의 달짝지근한 헤이세이 회고프로그램 비슷하게는 결코 만들고 싶지 않다'(p.309)고 밝히고 있다. 
 

 
 
일본 경제에서 1992년부터 대략 2012년까지 이어지는 기간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주로 경제 쪽에서 일본의 자산가격 버블이 터지며 시작된 장기 불황을 설명하기 위한 관용구처럼 쓰이고 있다. 이 책에선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하여 30년을 아우르며, 경제뿐만 아니라, 일본 정치와 아이덴티티까지 스코프를 넓게 잡는다.
 
먼저 일본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 낯선 단어인 '헤이세이'의 의미와, 왜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건지 궁금했다. 

헤이세이는 일본 천황 아키히토의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로 1989년 1월 8일부터 작년 4월 30일까지 이어졌다[각주:1]. 저자는 연호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스탠스임을 서두에 밝히지만[각주:2], '헤이세이'를 냉전의 종언과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일어난 시대적 구분으로서 사용한다고 독자의 양해를 구하고 있다. 아마도 책의 마케팅을 위한 전략적 작명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시작부터 일본의 실패 스토리를 파고들면서 은행과 산업의 망가진 역사를 다루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본의 은행에 대해서는 헤이세이 이전 시대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한다. 은행이 사실상 정치권력에 종속되었고 결단력을 상실하였다. 은행으로서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며 잘못된 길을 왔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말 일본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전에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을 펼친다. 일본의 전자산업에 대해서도 시장을 읽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에 집중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고 비판한다. 이어서 일본 정치의 실패를 다룰 때는 정치 개혁의 지속적인 실패에 절망한다. 
 
또한 헤이세이 시대에 일어난 자연재해와 비극적인 사건들을 돌아본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 저자는 지진은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지만 원전 사고는 인재라는데 방점을 찍는다. 일본의 아이덴티티 문제를 다룬 부분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나는 한국과 일본은 두 개의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을 보면 한국의 10년 후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세간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그런 주장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다이나믹스를 설명하기에 너무 편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시간이 가면서 내 생각이 맞기를 바라게 된다 (=내가 틀린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분부분 소름 돋는 유사점이 눈에 들어왔다. "헤이세이 일본이 도달한 것은 "문제가 있을 법한 사람"을 "모두가" 맹비난하며 울분을 발산시키는 사회다"(p.280). 한국 사회를 표현할 때는 '헤이세이'를 '2010년대'라고 대체하면 되겠다. 특정한 인물을,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갑이 을을, 을이 갑을, 우가 좌를, 좌가 우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난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러다 한쪽이 죽으면 다른 타겟으로 옮겨간다. 일본보다 심각한 부분도 있었다. 낮은 출산율은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소멸시킬만하다. 출산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려니 해결이 안 되고,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한다. 또한 잘못된 교육제도와 삶의 불안정성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 오늘날 한국의 20, 30대는 역사의 우연으로 인해 발생한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구원 받을 길은.
없어보인다.
 

  1. 현재의 연호는 '레이와'이다. [본문으로]
  2. '천황이라는 인간의 인생이 '시대'라는 역사적인 단위를 형성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환상'(p.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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