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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2박 3일이었던 여행에 하루가 더해졌다(만세!). 출국일에 임박한 터라 원래 예약했던 숙소의 일정 변경은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소 모아둔 힐튼 포인트를 ‘힐튼 도쿄’에서 터트리게 됐다. 좋은 숙소의 단점은 밖에 나가기 아깝다는 점이다. 한정된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에게는 더더욱 발목을 잡는 사치일 수밖에 없다.
 
힘겹게 16층 객실의 안락함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안락의자가 엉덩이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거기에 넘어가면 하루가 끝날 거 같았다. 밖으로 나와선 가장 먼저 카페인을 주입해야 했다.


 
구글맵에서 주변 카페를 검색했고, "COFFEE SWAMP"란 곳을 픽했다. 아주 작은 1인 카페였는데, 이유 없이 매료되었다.
 

 
⬇️ 호텔을 나와서 도쿄도청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가자 큰 도로가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전봇대와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서 사람 사는 분위기를 냈다. 일본의 '빌라' 건물은 어딘지 서울에서 90년대 중반에 지어진, 강남의 골목길에 들어가면 보일 것 같은 건물처럼 보였다. 골목골목 여전히 자판기가 서있었다. 기억과 달라진 점이라면 '타바코'라고 써진 담배 자판기가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 일본의 건물은 마감재로 타일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그뿐 아니라 담장이나 보도블록에도 타일이 자주 보였다. 지진이 났을 때 차라리 작은 타일이 떨어지는 게 안전한 건지, 아니면 재난 복구에 용이해서 쓰는 건지. 어렸을 때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상한 게 궁금했다.

물통으로 주차금지를 표시하는 건 한국과 닮았다.


'스왐프' 카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도 더 좁아서 놀랐다. 15인치 노트북만한 탁자 네 개가 오밀조밀 놓여 있었다. 낯선 사람과 가까이 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카페에서 보기 힘든 작은 모델이었는데, 피크 타임이면 보일러 용량이 부족할 듯 보였다. LP 플레이어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메뉴에서 눈에 가장 먼저 띈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카페의 오너는 한 잔 한 잔 시간을 들여 만들고 있었다. 카페의 분위기와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정말 도쿄에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10~15분쯤 지나고, 꽤 괜찮은 커피가 나왔다. 사이즈도, 폼의 두께와 질감도 제대로 된 플랫화이트였다. 우유의 맛은 한국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탕 두 스푼을 함께 받아서 플랫화이트에 넣고 섞지는 않았다. 
 

작은 하트가 그려져 있었는데 설탕 때문에 흐트러졌다.

 

카페 실내 사진은 찍기 힘들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에 많은 손님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스타에서 사진을 볼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swamp_shinjuku/tagged/)

 

스왐프 외부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이 몸을 도는 느낌이 들어서 밖으로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이었다.


큰길로 나오자 복잡한 고가철도와 수많은 간판이 달린 대형 건물들이 보였다. 길을 잃지 않고 신주쿠 중심으로 향해가고 있었다는 증거다. 

 

 
옛날에 여기를 와봤나 안 와봤나, 모르겠다.

 
카페에서 1.5 km 정도를 걸어가자 어쩐지 사람들이 더 북적북적 거리는 사거리가 나타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구글맵을 보니 이세탄 백화점 바로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백화점은 입구가 여러 곳이었는데, 나는 에르메스 쪽으로 들어갔었다. 바로 길건너에는 유니클로 매장이 있었다. 

여기도 에르메스는 웨이팅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그것보다는 쉽고, 직원의 마인드도 훨씬 뛰어났다. 간단한 대기절차로는 입구에서 내가 찾고 있는 상품(나는 ‘다이닝구 웨아-’라고 했다)을 말하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번호표를 줬는데 직원이 알려주는 시간쯤에 돌아와서 번호표를 주면 입장시켜 준다. 1시간쯤 다른 곳을 구경하다가 돌아와서 번호표를 보여주니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에르메스 지점마다 웨이팅 방식은 차이가 있었지만 어느 곳이나 한국보다는 나았다).

오래된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이세탄 신주쿠본점은 1933년에 개점했다. 1930년에 문을 연 같은 회사의 미츠코시 경성점과 어딘가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서 접시를 샀다. 언젠가 아내가 궁금해했던 아이템이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에르메스에 왔으니 남성용 카드케이스도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씨가 말랐다고 한다. 상담해 주던 직원은 요즘은 오히려 남자 지갑이나 카드케이스가 매장에 들어오는 게 드문 일이라고 했다. 있으면 샀을지도 몰라서 다행이었다. 조금 기다리자 오렌지색 박스에 잘 포장된 접시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나치게 친절한 대우를 받으며 매장을 나왔다.

 

비 맞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택스 리펀드를 받고 백화점을 나왔다.

이미 밖은 어두웠다. 도쿄와 서울은 원래 시차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정말 도쿄의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어두워진다.

 

 

저녁밥은 그냥 눈에 들어온 가츠동 집에 들어가서 때웠다. 원래 큰돈을 쓰고 나면 배가 고프지 않은 법이니까.

 

 

낮에는 몰랐는데 저녁에 보니 호텔 주변은 크리스마스 조명 장식으로 반짝반짝했다.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도 아니면서 서울보다 더 화려한듯한 일본이다. 어쩌면 미국보다 일본의 크리스마스가 더 자본주의적인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블링블링

 

도쿄까지 와서 편의점 주전부리 없이 하루를 끝낼 순 없었다. 

내 맘대로 죽순송이라고 부르는 '타케노토노사토', '혼쟈가'와 푸딩 2개, 칼피스 워터 그리고 칫솔을 샀다. 분명 집에서 챙겨 왔는데 아무리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먹는 양산 푸딩의 맛이었다. 푸르딩딩 푸딩. 이날부터 집에 돌아오는 아침까지 하루 2푸딩을 했다. 3푸딩도 하고. 매번 다른 브랜드의 푸딩을 먹었는데, 각자 장단점이 있었다. 그걸 먹으면서 기록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여하튼 이렇게 도쿄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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