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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레기라는 말이 기자를 가리키는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화자의 성향을 막론하고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도 기회를 주자며 질문 기회를 마련했을 때 침묵했던 상황은 유명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일본인 논객 두 사람이 오늘날 일본의 지성과 무지성에 대해 나눈 대담집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물론 두 저자는 일본의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나라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시감은 분명했다. 언론의 타락은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닌가 보다.

 

책은 작고, 324페이지가 넘지만 경량도공지를 사용해 가벼워서 들고다니기 좋다.

 

'침묵하는 지성'은 인터넷 시대에 침묵하는 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치다 타츠루는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누구나 넷상에서 발언권을 갖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진정한 지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무지성의 시대. 여기서 무지성이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활용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빠르고 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할 뿐, 진정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비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결과, 누가 써도 상관없는 글을 쓰고, 여론 뒤에 숨거나 "ㅇㅇ일보"라는 간판 뒤에 숨어 진실을 왜곡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우치다 선생은 우리가 침묵하는 지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침묵하는 지성이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진정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비판하는 지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조언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장에서 인구 감소에 관한 부분이 있는데, 아이를 낳지 않는 결정에 대해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 즉, '어른이 되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때문은 아닌지 질문한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아이를 가질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숙해 나가는 것 그것 자체가 아닐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그 이전의 자신이 익숙했던 세계와 풍경이 일변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게 아닐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주변의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제3장의 "'있을 수도 있었을 세계'에 관해서 생각하는 지성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도 집중해서 읽었다. 하루키 소설과 에세이는 꾸준히 읽는 사람인데도 지성과 무지성이라는 큰 주제에서 하루키의 글을 바라보니 흥미로웠다. '태엽 감는 새'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특히 '세계의 끝~'은 완독 했으나 이해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유일한 하루키 소설이다. 어쩌면 거기에 등장하는 현상과 사물을 너무 메타포로 인식하려고 노력한 게 아닌가 싶다. 곧이곧대로 보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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