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2005년인지 2006년인지, 어떤 기회로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메이지 무라(博物館明治村)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이축하여 조성한 테마파크로, 굳이 따지면 한국 민속촌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엔 나쓰메 소세키가 살던 주택도 있다는데, 당시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으므로 큰 감흥은 없었다. 안타깝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그곳에서 먹었던 미소카츠가 맛있었다는 것과 예쁘게 생긴 건물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내게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초가집이 석조건물로 바뀐 시기'라는 인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토픽은 도리어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자꾸만 마주치게 되었고,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나카 아키라의 '메이지 유신'은 여러 각도에서 메이지 유신이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다. 책은 크게 여섯 장으로 이뤄졌다. 일본의 개항으로 시작하여, 정유재란 이후 약 250년간 이어진 막부의 종말, 메이지 정부의 성립, 이와쿠라 사절단, 자유민권운동과 메이지 헌법체제로 이어진다.


작가가 보는 유신의 타임스케일은 1853년부터 1889~1890년까지이다.
여기서 1853년은 요코하마 앞바다에 나타난 미국의 흑선에 의해 일본이 개항한 해이고, 1889년은 '대일본제국헌법' 제정, 그리고 1890년은 교육칙어가 발포된 해이다. '메이지'라는 연호는 1868년에 시작되었으니 이미 메이지 천황의 즉위 전부터 시대는 변해가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철종~고종의 통치 시기였다.


"이와쿠라가 헌법제정의 전제 조건으로 방대한 황실 재산을 설정하고 이것을 메이지 천황제의 기초로 삼으려고 한 것에 반해 이토(이토 히로부미)는 종교가 미약한 일본에서 그것을 대신할 '중추'를 황실=천황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자세한 역사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읽고선 일본에서 천황에 대한 절대적 신격화는 메이지 유신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신사참배 따위의 행위도 이때부터 만들어진 '인공적인' 전통일 것이다. 권력자들은 천황 ‘시스템’을 이중적인 구조로 만들어냈다. 천황을 신(神)이자 군주로, 초법적 존재인 동시에 일개 기관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천황 시스템은 자동차 기어처럼 작동하여, 국가가 잘 굴러갈 때는 천황이 국가 사업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에 책임을 돌릴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보통의 일본인에게 자극을 준 것은 헌법 발포가 아니라 청일전쟁에서의 승리였다고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로 일본의 정치권력은 ‘새로운 일본’에 대한 국외는 물론 국내의 '인정'도 받아냈다. 이때 받은 탄력으로 조선을 먹어치웠다. 나아가 청일전쟁의 추억이 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때 만약 청나라가 승리했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조선의 운명은 동학 농민 혁명(1894-95)의 진압과정에서 파생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 책에선 메이지 유신의 주요 정치 이슈 중 하나였던 ‘정한론’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제국헌법의 성립 이전까지 일본 정치는 간단히 정한론 대 반대파의 대립으로 도식화 할 수 있겠다(정정의 글을 환영합니다). 정한론을 펼친 인물들은 대국주의자로 분류된다. 일본의 힘으로 아시아를 경영하여 서구 열강과 맞서겠다는 논리인데 그 시작을 조선 침략으로 삼았다. 반대편에는 소국주의자가 있는데, 이제 막 개항하여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의 복잡한 국내 상황을 안정시키고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주의다. 이 대립의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대국주의자들은 “편승할 기회가 있으면 자진해서 이익을 얻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실로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는 일이다”(p. 242)라고 주장하며 한반도 침략을 ‘준비했다’. 그런데 청일전쟁으로 그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온 것이다”(p. 243). 그렇게 한반도는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시기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보면, ‘안될놈’과 ‘될놈될’로 극명하게 나뉜다. 한국은 메이지 유신 같은 사건의 성공이나(여기서 박정희 유신을 동급으로 들먹이지 않길 바라며.) 자주적인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외국의 경험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배움의 현장에 조선말 어느 시기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역사는 심연처럼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엠마 크뢰벨의 책에도 한국인이 일본인을 그냥 싫어한다고 쓰여있는데, 그때와 감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일본의 경험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지피지기의 차원에서 말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