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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졌다는 표현이 자주 들렸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는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고대 아테네의 군인이자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썼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신흥 무역 강국이 기존 구도를 흔들면 기존의 무역 강국과 신흥 무역 강국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쓰인다"라고 한다. 헤게모니 싸움에 대한 고상한 표현일까?

그 와중에 서점에 들르니 한쪽 매대에 '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란 책이 놓여있었다. 저자인 로버트 D. 카플란의 프로필 사진이 박힌 검은 부분은 띠지인줄 알았는데 그 자체가 표지였다. 요새 누가 이런 표지를 만드나 의심스러웠지만, 여하튼 흥미로운 제목이 맘에 들어서 집에 데려왔다. 얇은 두께도 맘에 들었다.

김앤김북스 / 12,000원


이 책은 국제정치적 이슈를 역사적 사건과 인물 그리고 철학에 비춰본다. 저자는 지금의 세계가 '현대'나 '탈현대'가 아니고 오히려 '고대'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에서 여러 문제의 해법을 찾길 제안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자가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유럽과 중동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정치적 분쟁을 피부로 체험했던 배경이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역사에서 해결책을 구하라'는 저자의 주장이 색다르게 보인다.

"현실주의자들은 홉스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분석했기 때문에 존경..."(p.169)

카플란은 홉스의 철학을 가지고 현실 국제정치를 바라본다. 저자는 세계 평화가 '리바이어던'이라는 하나의 괴물을 잘 다룰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즉 미국이며, 그가 휘두르는 무기는 인권이다. "인권은 미국의 힘을 유지하고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확실히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p.167). 흥미롭게도 지난 3~4년 동안 인권이 어떻게 무기로 쓰였는지 잘 목격할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중국 위구르나 티베트 지역의 인권 상황과 관련한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발에 치일 정도로 쏟아졌고, 전 세계인은 중국의 만행을 영상과 사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중국은 기존 언론과 SNS등을 통해 퍼지는 부정적 여론으로 수세에 몰렸었다. 한편, 북한에 대해선 트럼프 이전까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상당히 목소리를 내던 미국이었지만,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남한 일부 세력에서만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즉, 저자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어떤 ‘무기’를 어떻게 써서 세계 최강국이 되었으며, 왜 그 위치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피력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누구한테 줄 서는 게 좋을지' 생각하도록 한다.

정치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개입이 국가적인 위협이라는 부분에는 밑줄을 그었다. "언론은... 정부에 정책을 지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관료들이 언론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의 이타심을 갖고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p.193). 언론의 성향이 어느 쪽이던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 언론은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본분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부분은 언론이 다룰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부와 군과 정보기관이 할 일이고 일반인들은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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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폭등은 해당 분야에서 발기부전같은 정부도 문제였지만 그러한 시장을 조장하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준 언론의 탓이 더 크다고 본다. 이러한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은 어차피 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정부는 언론이 씌우는 잘못된 프레임 때문에 조급했는지 자꾸만 헛발질을 날렸다.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았다. 


책을 읽기 전에 원제와 최초 출간일 등을 찾아본다. 그때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된 것을 보고, '출판사에서 구닥다리 책을 시류에 적당히 끼워맞춘 제목으로 장사하는데 당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완독 후 곱씹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 책이 18년 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유효한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국제정치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한번 더 외쳐본다 - 미국만세. 나는 이 책을 쑹훙빙과 피터 자이한 사이에 꽂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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