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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운명의 그녀를 만났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오늘 저녁 홍대입구역은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열리는 클럽데이를 맞아 이런 저런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매웠다. 사람들로 붐비는 길은 마치 방금 문이 열린 양계장같았다. 뛰쳐나온 닭들을 보는 듯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본능적으로 목적지를 찾아 가는 것 마냥 움직이며......

나의 마음도 그녀를 향해 찾아 가는 것이 본능이었을까? 내가 그녀의 눈을 바라 본 것은 한 편의점 앞에서 였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왼쪽 손목을 들어 시계 바늘을 보았다. 어차피 아직 약속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단 사실을 알고는 멍하게 팔을 내렸다. 다시 눈을 들었을 때 내 앞에는 한 여자의 옆 모습이 보였는데, 그녀도 약속에 늦겠다는 연락을 받은 듯이 그렇게 핸드폰의 조그만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얀 피부, 속쌍커풀 아래 큰 눈(내 기준에서), 오똑한 코, 살짝 통통한 볼과 목소리는 어떨까 궁금하게 만드는 입, 그리고 막 묶은 듯한 등까지 내려오는 머리. 조금 눈을 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크지 않은 키. 그냥 모든 것이 보기 좋았다. 문자를 읽으며 살짝 찡그린 표정도 물론 그랬다.
그렇게 내가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던 찰나에 그녀도 핸드폰의 홀드 버튼을 누르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이어지는 약한 심장마비, 혹은 터지기 직전의 고요함. 나는 그 순간을 벗어나고자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동시에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고, 귀는 갑자기 따뜻해졌다. 이쯤이면 얼굴도 홍조를 띄웠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 것이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몇 분을 더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전까지 친구는 몇 분이나 늦을지 생각하던 머릿속은 어떻게 한번 더 눈길을 돌려볼까 고민하게 되었고, 지금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다. 내 머릿속은 마치 방금 문이 열린 양계장을 뛰쳐나오는 닭을 보는 듯이 온갖 생각들이 뒤엉켰다. 심장의 불규칙적인 고동, 긴장한 손은 핸드폰의 슬라이드를 끊어지도록 올렸다 내렸다. 뒷통수 어딘가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아드레날린, 동시에 소피스트 정신에 입각해 말도 안되는 윤리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 과연 그녀를 바라봐도 괜찮은 것인가? 원시적이게도 내 이성적인 생각은 본능에게 순간 자리를 양보했고, 내 눈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도 내 눈을 응시했고, 그렇게 바라보기를 2초. 난 헛웃음을 터트렸고, 그녀도 따라 웃었다. 나는 인사의 의미로 약하게 목을 끄덕였다.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옮겼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세 걸음이었고, 세 마디의 말을 걸었다.

우리는 만났다.

실재한 오늘을 배경으로 쓴 가상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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