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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거지?'
이 말을 되뇌며 끝 없이 이어지는 골목 사이를 빠져 나가려 한다. 골목을 달려나가면 또 다른 골목이 이어진다. 어쩌면 나는 미로에 갇힌지도 모른다. 같은 골목을 돌고, 또 돌고 있는지, 저 위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이 생각의 카오스 중심에는 어서 이 미로 같은 곳을 빠져나가길 갈망하는 것 뿐이다.

애초에 이 곳에 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 누군가가 나를 쫓고 있고, 그 손에 잡히면 나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린다. 골목에서 나오면 그 다음 골목이 눈 앞에 펼쳐진다. 주위는 어둡고, 낡고 힘없는 가로등 만이 나의 발을 비춘다. 나의 그림자도 그 가로등 불빛과 함께 힘을 잃었다. 나의 발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림자는 멈추었다. 그렇게 나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를 질질 끌고 계속 달려간다.

나의 그림자 뒤로 더 큰 그림자가 다가와 스스로 포갠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동자가 촉촉해지며 손발은 심하게 떨리고, 온 몸의 구석구석 식은땀이 흐른다. 떨리던 팔은 잡초가 뽑히듯 찢겨져 나가고 너무 지친 다리는 그대로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너덜너덜 거리는 살이 주위에 피를 뿌린다. 이미 숨이 멈추어 가는 몸뚱이는 그나마 남은 호흡을 유지해 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암흑 속의 암흑이 보이며 눈이 감겨진다. 아니, 괴로움에 눈을 감는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거대한 소리에 눈을 뜬다. 머리맡에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로 울리는 알람소리가 무척이나 기괴하게 들린다. 눈은 떴으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직시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이내 목숨이 붙어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팔과 다리가 잘 붙어 있는지 감각으로 확인하기 위해 온 몸의 신경이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아직 꿈 속의 골목에서 헤매는 신경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듯 하다. 팔은 끊어진 대신 지독하게 절이다. 아마 자는 동안 꺾여있던 모양이다. 이 와중에 골목길을 헤매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아 본다. 끔찍한 상황이었고, 다시 돌아가면 그 고통을 다시 느낄 것을 아는데 왜 다시 눈을 감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 넘는 호기심의 표출인가. 

눈은 이내 떠지고 깔끔한 숙면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눈을 부비고, 이불을 걷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옷을 벗고 샤워기를 튼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지난 밤 꾼 꿈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다시 그 곳에 다녀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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