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아시아 지역의 외교정세가 중대한 기로에 선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 특히 이번 시진핑(习近平) 중국국가주석의 서울 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었고, 바로 옆에선 북한과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에 진척을 보이며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북한의 유화 제스쳐에 대해 일본은 대북 제재를 일부 거둠으로 보답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헌번재해석을 통한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천명하며 한중 양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벌써 [한중 vs 북일]의 구도로 테마를 형성하여 기사를 내는 것 같은데, 아직 이쪽의 외교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한참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현 상황은 다음 세 가지 사건의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1) 중국과 한국의 친밀함이 상승하는 반면 북한은 멀어지고 있다
2) 일본의 대북 영향력이 증가하고 기존에 중국이 차지하던 부분도 일본이 채워가고 있다
3) 한국이 중국의 반일노선에 합류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재의 한중 관계는 따뜻하다는 외교적 수사가 딱 어울린다. 추 궈홍(Qiu Guohong) 주한중국대사는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어떤면에서 보더라도 한중 양국간 외교사에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음은 물론, 중국 언론들도 양국의 관계를 '역사상 최고'라고 평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국가주석이 서울방문에 앞서 평양에 들르는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오직 서울만 방문했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는데, 특히 북한 김정은에게 분명한 메세지를 전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한편 일본은 북한의 납북자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둠으로써, 도쿄와 평양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우러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현상들은 충분히 흥미진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언급했던 한중관계를 보자. 중국이 한반도를 상대로 제로섬 외교를 펼치는 것은 아닐까? 즉,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어느 정도 잃는 대신에 남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여 상쇄하리라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현위치에 오르면서부터 평양과 베이징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정부에서 60여 년 이상 이어져 온 대북 영향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전환은 북한의 장성택 처형과 대중(對中) 관계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보도에 따라 기정사실화 되어온 것이다.
둘째, 일본정부의 북한 납북자 문제에 대한 외교적 성과는 일본의 대북 전략의 변화라기보다, 아베 총리 개인차원의 외교적 성과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대북 제재를 조금 해제했다고 해서 양국이 다른 사안에 대해 협력한다거나, 일본의 대북 영향력이 조금도 생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명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이 인기라고는 하나, 헌법재해석을 통한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전격 발표한 후 일본 국내에서조차 심각한 반대에 직면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과 납북자 문제에 대한 성과를 냄으로써 아베 정권은 이미 실추된 외교관계에서 어느 정도 정치적 이익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베 총리는 이 문제에 더욱 힘을 쏟았을 것이다.
한국은 항상 일본이 원하는 '다리'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이 함께 반일 노선을 구축하는 쟁점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주제이기도 하다. 한중 양국은 일본에 대한 불신을 공통으로 갖고 있으나, 여태까지 독자적으로 일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나타내왔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방 70주년 기념식 공동기념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등을 제안했으나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참 좋아보이는 한중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과 한 목소리 내기에는 신중히 접근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시진핑 주석 서울 방문 이후에 북한을 잘 달래서 북중 관계과 회복되어버리면 스스로 북중일미로 부터 고립시키는 꼴이 됨은 물론, 박근혜의 아젠다인 신뢰프로세스까지 말려버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초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목격했듯이 미국 정부는 한일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려 할 것이다. 일본정부의 이번 집단적자위권 문제로 인해 동아시아의 긴장은 높아지겠지만, 이곳의 외교판세에 금방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가까운 시간 내에 동아시아의 중대한 판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이유는 결국 이 지역의 문제의 핵심은 결국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핵문제는 지속될 것이고,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문제는 그에 비해 심각성이 떨어진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나 일본이나...)
박근혜 정부로서는 부담 되는 상황일 것이다. 중국의 러브콜에 모두 응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은 분명하고, 그렇다고 모두 무시해버리면 현재 유일한 '친구'인 중국과도 멀어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크게 한 방 터트릴 생각 말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각각 현상유지를 목표로 삼고,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는 최대의 국익을 위해 힘 써주길 바란다. 그 정도로 유능한 정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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