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타이완 체류기는 아직 안 끝났지만, 
아무래도 입대까지 완결을 못 볼 것 같아 마지막을 먼저 써야겠다.


설렘과 걱정으로 시작해서,
지루함에 늘어지기도 했지만,
그 끝에선 시원함보다 큰 아쉬움이 남았다.

짧았던 두 달 반이 지나고,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
업무가 끝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방학식날의 풍경은 한국과 비슷했다. 
정상 등교, 별거 없이 시간 때우기, 
식객 선생의 마지막 인사, 눈물 흘리기...




봉사하러 왔다곤 했지만 오히려 짐만 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학교의 모두가 내게 친절히 대해줬다.
아이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老師(선생님)'라고 부르며 잘 따라주었다.
눈물을 보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새 정이 들었었나..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산속의 한 작은 학교에서,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과 짧은 단어로, 

몸짓으로, 마음으로 소통했다(라고 생각한다). 

[맑은] 경험을 하고 가는 기분.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다가도 운동장에 나오면 다시 밝아졌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
언젠가부터 내 감정은 드러내면 안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진심을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일까?





아침마다 귀아프게 짖어대던 개. 내 숙소 밑 담벼락 건너편에 있던 놈인데, 존이 가끔 먹다 남은 음식을 주곤 했다.
크고 굵은 나무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는데, 어딘지 마음이 짠했다.
 
 
여러번 열받게 했던 6학년 아이들이다.  



그래도 제일 잘 따라준 친구들이기도 하다.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를 좋아하고, 쉬는시간에는 유튜브로 동영상을 틀고 춤을 따라하던 아이들. 지금은 중학교에서의 첫 해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키도 많이 컸겠지.


여기까지가 옥산국소(玉山國小)에서의 이야기다.

[눈물 닦고]

나는 선생들의 회식자리에 참석한 후, 한 분의 차를 타고 신주의 아이젝 숙소로 돌아왔다.
큰 가방과 꽉 찬 베낭을 짊어지고 숙소 앞에 내렸다.
뭔가 큰 일이 끝나고 느껴지는 묘한 기분과, 약간의 적적함 그리고 시원함이 함께 몰려왔다.

뒤를 돌아보고, 숙소의 파란 문을 열었다.

출발 전날에는 아이젝 친구들이 작은 '파티'를 열어주었다.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고 나눠먹었다.

숙소 한 쪽 벽에 붙어있는 코르크판에 작은 쪽지를 써놓고 왔다.




모두에게 고마웠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음에 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좋은 경험과 기회를 받았지만, 너무 내 시간만 누리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했던 것 같아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내 쪽지가 세 번째였고, 지금은 저 게시판의 반은 찼을 것 같다.
그만큼 더 많은 마음의 소통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신주역.


다음날 이른 아침, 타오위안공항으로 이동했다.
타이완을 떠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확실하다.

여기까지가 나의 타이완 체류기다. 끝.



후기.
   원래 4월까지 타이완 체류기 전체를 완성하려고 했습니다만,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이 겹처서 계획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편은 최대한 정성을 들여 좀 재밌고 울적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입대를 코앞에(3일) 두고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밝게 쓸 수가 없습니다. 
   제목에서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편이지만, 편 수는 쓰지 않았습니다. 원래 20편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타이완 체류기인데, 스토리를 짜보니 그것보다 길어질 것 같아서... 말하자면 이 마지막 편은 마지막이라기 보다, 봉합편 정도로 해두고 싶습니다.
   지금 느끼는 내 기분이 듬뿍 담긴 엉망진창 글. 일단 여기서 봉합하고, 준비해놓은 스토리와, 메모들과 사진들을 바탕으로 타이완 체류기 마지막까지 올리고, 제대로 된 마지막 날의 풍경, 제대로 된 후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끝.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