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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섬 일주하려고 했다가 못한 이야기.
타이완에서 지낸 마지막주의 여행이야기.

먼저,
여행 떠나기 전, 학교의 한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신주현新竹縣 관시동關西洞에 한국인 목사 일가가 산다고 한다. 선교를 목적으로 온 듯. 좀 더 들어보니 1994년쯤 타이완에 왔다고 한다. 세 자식이 있는데, 딸 둘은 한국에서 일하고, 막내아들은 타이완에 있다고 한다. 워낙 작은 지역이라 꽤 유명한 것 같았다. 만나보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아직도 그곳에 사는지 궁금하다. 건강하시길.

긴 여행에 앞서 타이완 레일패스를 끊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발급해주는 기차무한탑승권으로, 이용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단, 고속열차인 갸오테(高鐵)는 이용할 수 없음. 참고로 일본에서는 'JR RAIL PASS'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중간급 신칸센까지 이용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4년에 이용함). 최근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상품을 외국인에게만 판매하고 있음을 알았다.

첫번째 목적지는 타이완섬 중간, 해발 784미터에 있는 타이완 최대의 호수 르웨탄(日月潭). 타이완 여행의 핫스팟으로 소개된 곳이다. 

이날의 이동경로. 신주부터 얼수이까지는 빨간색, 얼수이부터 지지까지는 주황색



이 티켓을 들고 이른 아침 신주역에서 얼수이까지 가는 열차에 올랐다. 그날의 첫차였는데 좀 불편했다. 기관차는 일반 전철에 있는 것을 떼다 붙인듯 했고, 좌석은 지하철같이 측면을 바라보게 되어 있었다. 너무 일
찍 일어났는지, 한참 헤드뱅잉을 한 기억이 난다. 중간에 창 밖을 보고 타이완은 북에서 남으로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남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른 아침, 신주역. 하행선이라 한산했다.


아침으로 먹으려 산 도라에몽빵. 통통한 머리부터 뜯어 먹는게 굿. 미안 도라에몽

이 열차로 얼수이까지 갔다. 한국의 누리호?와 동급이 아닐지? 대우에서 만든 열차.


얼수이에 내렸다. 얼수이는 르웨탄(日月潭)으로 가기 위해 지지센 열차로 갈아탈 중간 경유점이었다. 다음 열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아 역 밖으로 나갔다. 재차 우리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역 옆의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다. 병역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우리를 반겼다. 웬일인지 영어가 굉장히 엄청 유창했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 대화를 나눴다. 신기하게도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그곳에 머무는 중이라고 한다. 타이완 대학생들도 봉사활동에 열심인 것 같다. 그는 '다음 주'에 한국여행을 떠난다고 들떠 있었다. 잘 갔다 오라고 인사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때 한국은 꽤나 추웠을 텐데 그의 여행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얼수이역

얼수이역 광장의 풍경. 한가로운 시골이다.


흡사 우리동네 재래시장


얼수이 역 주변을 돌아다녀 봤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상점은 이제 막 문을 연 듯이 보였고, 행인은 없었다.
목도 마르고 기차에서 먹을 설병을 사러 한 구멍가게에 들렀다. 과자를 고르고 계산하는데 고량주매니아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나: "한국이요"
아저씨: "역시 한국 사람은 잘생겼어"란다.

진심입니까? 어쨌든 생큐.


기분은 여기까지만 좋았다.
 

지지센 열차. 일반 전철과 같았다.


기관사와 말하지 말것.


 

르웨탄(日月潭)에 가는 길은 험했다. 일단 얼수이에서 탄 지지(集集)센 열차는 어떠한 이유로(기억 안남) 수이리(水里)역에서 내렸고, 점심을 챙겨 먹은 후, 르웨탄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탔다.


뭐 먹을지 모를 땐 그냥 이렇게 생긴 '타이완부페'에 가면 편했었다.


또 졸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후에도 멍 때렸다. 안타깝게도 버스에는 안내방송이나 버스의 경로가 표시된 지도가 없었고, 그렇게 멍하니 창문만 보다가 르웨탄을 놓쳤다. 한참을 더 갔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버스기사에게 르웨탄이냐고 물었다. 이미 지났다고 한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길을 건넜다. 그곳은 소위 말하는 '깡촌'이었고, 도로 위엔 먼지만 폴폴 날리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횡계와 진부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어딘가에 내린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여행의 첫 고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사건을 해쳐가며 나의 서바이벌 차이니즈는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여하튼, 길 저쪽에서 화려하게 생긴 관광버스가 접근했고, 거기에 올랐다. 가격이 조금 비싸고, 누가 봐도 '외국인 관광객 탑승중' 표지가 붙었다고 생각할 만한, 관광버스였다. 종점은 르웨탄. 싸늘한 분위기 속에 르웨탄까지 갔다.

웃으라고!!!!

(뉴질랜드 마오리족이다. 그냥 이 표정이 당시의 내 기분을 대변한다)


형식적으로 관광유람선을 타고, 내렸다. 손오공의 친구인 삼장법사의 유골이 있다는 절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날이 금방 저물어서 사진은 포기했다. 르웨탄에서 나가는 버스 타기도 쉽지 않았다. 약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려 막차에 탔다. 


르웨탄에 도착은 했으나...


유람용 보트가 많았다.


호수 중앙에 있는 섬. 원래 산이었는데 물이 차오르면서 섬이 되었단다.


르웨탄 기념석 앞에서 사진 찍고 있는 대륙 아저씨들



깜깜할 때 다음 목적지이자 숙소가 있는 타이난으로 향했다. 아마 얼수이에 다시 와서 또 다른 기차에 올라탔던 것 같다. 타이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도로는 어두웠고, 간간이 불이 켜진 곳은 24시 편의점이나 맥도날드였다. 야시장마저 닫은 시간에 예약한 유스호스텔을 찾아갔다. 
가다가 턱에 걸려 넘어졌다. 아프고. 서러웠다.
 타이완의 인도는 높낮이가 좀 들쭉날쭉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입구에 'Kyunghee Uni.... 어쩌고'라고 쓰여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낯익은 문구. 경희대 학생들이 와 있었나 보다. 우리가 들어가니 로비에서 컴퓨터를 하며 노닥거리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리를 주시했다. 키를 받는데 한 친구가 다가와서 '한국분이세요?'라며 살갑게 인사해줬다. 오래간만에 듣는 한국말은 반가웠지만, 그때 내 기분이 워낙 그래서 화답해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다.
미안.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웠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타이완 일주의 첫날은 끝났다.

다음 날은 타이완 제2의 도시, 가오슝(高雄)에 가기로 했다. (이어짐)


(2011년 7월 26일 작성시작/2011년 9월 19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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