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회사 일로 아일랜드🇮🇪에 다녀왔다.
나에게 아일랜드는 미지의 세계였다. 겨우 아는 거라곤 잉글랜드 서쪽에 있는 섬으로, 18~19 세기에 대기근을 겪었고 그 일로 반영(反英) 감정이 심해졌다는 것, 그리고 아이리시 억양은 알아듣기 힘들다는 것과 '아이리시 커피'에는 술이 들어간다는 사실 정도였다.
미지의 섬까지 가는 길는 멀었다. 인천-더블린 간 직항 편이 없어서, 무조건 경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카이팀을 타기 위해 에어프랑스로 예약을 했고, 갈 때는 파리 샤를드골(CDG) 공항, 올 때는 암스테르담 스히폴(AMS) 공항에서 머물게 되었다. 비행시간은 인천-파리 14시간 10분, 파리-더블린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환승 대기는 3시간 반 정도로, 편도 18시간 이상 걸렸다.
먼저 짐싸기부터 신경이 쓰였다. 유럽 공항의 수하물 분실과 빈번히 일어나는 도난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두 개의 수트케이스에 짐을 분산시켰다. 거기에 더해 평소에는 쓰지 않던 '캐리어 벨트'와 '와이어자물쇠'까지 준비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 캐리어 분실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소매치기도 없었지만 벨트와 자물쇠 덕분에 얻은 마음의 안정은 부정할 수 없다.
출장 짐은 간소하게 준비했다. 기내로 가져갈 작은 20인치 캐리어에는 당장 입을 티셔츠와 바지와 속옷을 챙겼고, 나머지는 모두 큰 가방에 넣었다. 인터넷에는 짐가방을 오픈한 상태로 사진을 찍어 놓으라는 팁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항공사에서 짐가방을 분실했을 때 보상을 위한 내용물 확인에 유용하다고 한다. 나는 사진에 더해 영상을 모두 남겼다. 미국이나 싱가포르를 다니면서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이라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파리행 에어프랑스 AF267편은 오전 10시 50분 출발이었다. 지난달 미국 출장의 교훈을 잊지 않고, 미리 터미널2에 발레파킹을 예약하고, 일찍 공항에 나왔다. 공항 터미널의 사정이 한 달 사이에 크게 달라진 건 없어서 여전히 붐비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곧 음료가 서빙됐다. 보통은 이때 물이나 주스를 고르는데 에어프랑스니까, 프랑스는 샴페인의 본고장이니까 샴페인을 받았다. 조화로운 맛이 특징이었고, 한 방울씩 느껴지는 단맛이 좋았다. 한국에서도 쉽게, 비싸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샴페인이라고 하니까 다음에 한 번 구해보고 싶었다.
이어서 어매니티와 위생키트가 제공 됐다. 어매니티에는 치약, 칫솔, 양말과 간단한 클라랑스 화장품 샘플들이 들어있었다. 별도로 지급된 위생키트는 알코올티슈와 핸드새니타이저, 마스크가 동봉되어 있었다. 코로나의 흔적일 것이다.
에어프랑스 777-300 기종에서는 기내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관심 없는 기능이지만. 점점 제공하는 항공기가 많아지는 추세다. 나는 여전히 기내에서만큼은 세상과 단절되고 싶다.
이륙 후 기내식 런치가 나왔다.
애피타이저가 서빙되면서 음료를 요청하면서 ‘do you have something sparkling’라고 했다가 안경 쓴 승무원으로부터 어릴 적 옳은 답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영어선생님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스파클링이 아니고 샴팡이에요’라는 한마디를 들었다. 👨🏻🎨 오케이 크로크무슈.
스타터 중에는 훈제연어 타르타르가 괜찮았다. 치즈 애플 나폴레옹도 맛있었지만, 사과를 먹을 수 없는 인간이라 맛만 보고 물렸다. 접시 위의 컬러풀하게 동그란 것들은 둥글게 커팅한 멜론과 수박 가니쉬. 별거 아닌데 고급스러워 보였다.
메인은 팬프라이 투흐네도를 골랐다. 다른 선택지는 로즈미리 소스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 또는 해산물 파스타가 있었다.
다른 메뉴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메인 디쉬 다음은 치즈가 서빙될 차례였는데, 치즈를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스킵했다. 아까 그 승무원👨🏻🎨이 자꾸 블루치즈를 권했는데 다 남길게 뻔해서 완고하게 물렸다. 쏘리 무슈.
디저트는 딸기 무스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이 나왔는데, 아이스크림은 받지 않았다. 딸기 무스 케이크는 대단히 크게 서빙됐는데 맛있어서 (그리고 무스의 식감에 중독되어) 끝까지 다 먹었다. 빈 접시를 보고선 큰 죄책감을 느꼈다.
기내 화장실에는 처음 보는 아이템이 비치되어 있었다. 사진 아래쪽 붉은색 병에 든 ‘오 디나미산테(Eau Dynamisante)’. 향수도 아니고 토너도 아닌 향기 나는 액체였다.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서 그냥 손에 좀 덜어서 팔에 문질렀는데 향이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이것이 Treatment Fragrance로 분류되고 피부 트리트먼트와 향기 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파리, 암스테르담, 더블린에서 모두 이걸 팔고 있어서, 유럽에서는 꽤 흔하게 쓰이는 물건이라고 생가했다. 가격은 더블린 공항 면세점이 가장 저렴했다 본고장인 프랑스 보다도.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각 면세점마다 입점이 되어 있었다)
한숨 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맞은편 갤리에 스낵바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필 그때 스낵바 옆에서 식사를 하던 승무원👨🏻🎨이 나를 보더니 스낵바에서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라고 말해줬다. 그것을 보고 ‘에어프랑스는 이런 것도 있네요?'라고 했더니, 처음 타냐면서 모두 한 종류씩 챙겨줬다. 특별히 맛있다고 알려준 쩝쩝 방법은 초콜릿을 사브레에 올려 먹으라는 것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먹는다는데 사실여부는 모른다. 맛은 정말 좋았다.
스낵의 다양성에서는 에어프랑스 승, 스낵의 스케일은 대한항공 승.이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다.
착륙 전에 두 번째 식사가 제공됐다. 브라운소스를 곁들인 닭찜(braised chicken), 익힌 과일 디저트와 바닐라 크림 퍼프가 한 플레이트에 차려졌다.
닭고기 요리는 흔한 기내식 ‘치킨’ 초이스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고, 그 외 큰 특징은 없었다. 디저트인 바닐라 크림 퍼프가 혓바닥을 제대로 사로잡았는데, 체면 버리고 하나 더 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 승무원👨🏻🎨은 분명 구해줬을 것이다.
두 번째 기내식을 다 먹은 즈음 비행기는 스위스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알프스를 구경하려고 창문을 봤는데 구름이 두껍게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뭔가 삐죽한 게 있었는데 마터호른인지 아니었는지 불분명했다. 좀 아쉬웠다.
비행기가 하강하자 프랑스땅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지형이 평지라 놀랐고, 농경지가 끝도 없어서 또 놀랐다.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가 갈리아 땅을 기를 쓰고 차지하려고 했던 이유가 이것 아니었을까? 자꾸만 확장되는 제국의 경계선과 그 안쪽의 신민을 먹여살리기 위한 비옥한 경작지가 필요했을 것 같다.
샤를 드골 공항은 거대한 노출콘크리트 건물로 20세기 느낌이 물씬 풍겼다. 분명 처음엔 아방가르드한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지상에 항공기가 다니고, 공항 접근 도로나 터미널 사이를 오가는 셔틀트레인은 그 아래층에 건설된 게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터미널을 옮길 때마다 가방 보안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불편했다.
한편, 면세점은 자랑스러운 프랑스 브랜드로 가득했다. 디올,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등. 파리 올림픽 기념품도 많았는데 아무것도 사지 않은 건 좀 후회했다.
파리 공항에서는 뜻밖에도 보안검사와 면세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 내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어느 공항에서도 이 정도로 한국말 인사를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예전에 무한도전에 나왔던 박명수와 마카롱집 점원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장면에 대해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6월의 유럽은 해가 게을렀다.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했던 오후 9시 반에도 가로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환했다. 이런 환경이라면 저녁식사에 2시간씩 느긋하게 시간을 들이는 게 이해가 간다.
다음 비행기에 탑승했다. 활주로에서 바퀴가 떠오를 때 잠에 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도버해협을 건너고 있었고, 또다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잉글랜드를 지나고 더블린에 가까워졌다. 프랑스나 잉글랜드에 비해 아일랜드 지상은 어두웠다. 인구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더블린 공항에 착륙한 오후 11시쯤 세상은 어두웠지만, 미련 많은 초여름 태양은 높은 구름 위에서 보라색 마지막 빛을 쥐어짜고 있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밤늦은 시각이라 교통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의 운전은 쉽지 않았다. 공항을 나와서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은 노프라블럼. 뉴질랜드와 다를 게 없었다. 문제는 일반 도로인데, 정말 좁았다. 조금 오버하면 제네시스 GV80은 도로 양쪽 차선에 꽉 찰 것이다. 그런 도로 환경이라서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렌터카 반납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때 받은 일정을 살펴보니 자동차가 전혀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바로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공항으로 돌아가 차를 반납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차를 렌트한 것이 이번 여정에서 저지른 가장 바보 같은 짓이 되었다. 차라리 아무 택시나 잡아 탔어야 했다.
여하튼, 밤늦은 시간에 도착한 Powerscourt Hotel. 더블린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이니스케리(Enniskerry) 지역에 위치한 호텔로, 목요일까지 4박 5일간 머물렀다.
아일랜드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 ↓ 광고 클릭으로 응원해 주세요 ↓ ↓
'Bon Voyage > 짧은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일랜드🇮🇪 워크트립 3 / 더블린 다운타운 디너 / 파워스코트 가든 (0) | 2024.08.13 |
---|---|
아일랜드🇮🇪 워크트립 2 / Bray 구경, 디너, 조니폭스 아이리시펍 (0) | 2024.08.04 |
오클랜드 먹어보기 - 3 (0) | 2016.12.13 |
오클랜드 먹어보기 - 2 (0) | 2015.11.24 |
오클랜드 먹어보기 - 시작 (0) | 2015.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