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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어제 이틀에 걸쳐 EBS에서는 '히로시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아마 월요일이 광복절이었기에 특별히 편성된 듯하다. 이것을 보고 있자니 7년 전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에 갔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고1이었고, 별생각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 학교에서 떠나는 일본여행에 참여해서 생전 처음 일본에 가게 되었다. 혼슈(本州)의 곳곳을 돌아보던 중 히로시마에 이틀 정도 묵었던 걸로 기억한다. '히로시마 물고기는 눈이 세 개'라는 선입견으로 도착한 도시는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된 곳이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히로시마 시내 도로 위를 다니는 노면 전차가 인상 깊었다. 이 여행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아니라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에서 느낀 묘한 느낌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박물관
히로시마 시내 중심에는 원폭 돔이 있다. 1915년에 상업전시관으로 지어진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8월 6일 미군의 원폭 투하로 반파되었다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옆으로 공원이 있고, 그 너머에는 평화 박물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곳은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기타 이것저것에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사진과 글을 시간을 기울여 읽었다. 급성백혈병에 대한 사진과 글이 많았고, 방사능 때문에 기형아로 태어난 아기들의 사진도 있었다. 피부가 녹아내려 유령처럼 도시를 활보하던 사람들의 사례도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지금도 히로시마 하면 기억나는 것이 있다. 계단에 새겨진 한 남자의 그림자. 순식간에 인체를 증발시키는 원폭의 위력을 극명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억난다. 그 그림자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육체가 증발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꼈고, 동시에 인과응보의 결과라며 쾌감도 느꼈다.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때 우리를 인솔하던 선생이 다가왔다. 우리가 '잠자리 안경'이라고 불렀던 초대형 안경을 쓴 이 나이 많은 여성은 일본어 선생이었고, 개인적으로 내가 그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 친절했다.
'잔인하지?' 선생이 물었다.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폭탄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걸요'
'네 말이 맞아, 그치만 수 많은 사람이 잔인하게 죽었지' 선생이 말했다.
'그렇네요.' 나는 대답했고, 대화는 끝났다.
7년도 넘은 대화지만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도덕의 딜레마.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누군가 말한다면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다.
'잔인하지?' 선생이 물었다.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폭탄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걸요'
'네 말이 맞아, 그치만 수 많은 사람이 잔인하게 죽었지' 선생이 말했다.
'그렇네요.' 나는 대답했고, 대화는 끝났다.
7년도 넘은 대화지만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도덕의 딜레마.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누군가 말한다면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다.
원폭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사실이다. 그래서 그것이 정당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생명을 존중한다면 말이다. 반면 일본이 죽인 피식민지인의 수, 그들의 더러운 행위와 비교한다면 곱베기 원폭도 부족하다. 여하튼 원폭의 위력 앞에 일본은 굴복했고, 조선은 반쪽짜리 해방을 맞는다. 같은 시기, 조선 밖에는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진공을 준비하던 광복군이 대기 중이었다. 그들은 미군 특수부대에서 훈련 받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것으로 그들의 승리와 나라의 광복은 보장된 것이었을까? 역사에서 '만약'은 허무할 뿐이고, 원폭의 정당성은 아마 풀리지 않을 딜레마인 듯하다. 그저 평화의 소중함을 각성케 하는 인류 역사의 흔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히로시마 다큐멘터리는 E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회원으로 로그인 해야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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