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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여행자의 시간은 그런 법이다.

마지막날은 할 일이 많아서 일상에서 처럼 빨리 일어났다. 체크아웃을 하고, 시나가와에서 잠깐 업무를 봐야 했다. 점심은 친구들과 먹고, 짧은 관광까지 마친 후에 나리타에 갈 계획이었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었는데, 더 로열파크호텔 시오도메가 내세우는 특징 중 하나는 ‘도쿄타워뷰’이다. 내가 머문 가난객실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또 나 홀로 여행에서 좋은 전망까지 챙기는 건 사치라고 생각해서 별 생각을 하지 않았건만… 막상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특별히 공기가 투명한 날이었다. 멀리 눈 덮인 후지산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조식을 먹기 위해 내려간 양식당에서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 바로 그 도쿄타워뷰가 펼쳐졌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핸드폰의 사진기를 켰다. 종업원에게 "멋지네요"라고 하자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소데스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아마도 수 백 번 같은 질문을 받고, 또 그만큼 대답을 했을 터다.
 

엽서다 엽서

 
다음에 이 호텔에 다시 찾아오고 싶어졌다. 그때는 조금 더 지출해서 뷰가 있는 방으로.
 


 
식사를 마치고, 체크 아웃을 하고, 카운터에 가방을 맡긴 후에 시나가와를 향해 출발했다.
 
시나가와의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일부러 유리카모메선을 타고 오다이바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어려서 보고 인상 깊었던 레인보우브릿지를 건너면서 바다 구경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이 있는 건물 밖에는 지브리스튜디오의 조형물이 있었는데, 나름 지역의 명소인 것 같다. 푸른색 유리로 둘러싼 마천루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조형물인 것은 다름이 없다.
 

 


 
유리카모메선은 무인으로, 게다가 철도 없이 콘크리트 궤도를 타이어 바퀴로 굴러가는 경전철이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동영상을 찍어주고 싶었지만, 양쪽 맨 끝 자리는 이미 오타쿠 여러분에게 점령되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대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한 소심한 30대다.

유리카모메선 오다이바카이힌코엔(お台場海浜公園) 역 내려 린카이선 도쿄텔레포트(東京テレポート) 역으로 환승했다. 말이 환승이지 완전히 다른 역이라 꽤 멀리 걸어가야 한다. 두 역 사이에는 수도고속도로를 넘는 아주 긴 육교가 있는데, 이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거의 감고 걸어가야 했다. 오래 기억 남을만한 강렬한 빛이었다.
 

드라마로 시작해서 영화까지


도쿄텔레포트역에는 흥미로운 점 하나. 열차가 들어올 때 플랫폼에서  ‘춤추는 대수사선’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게 1997년 드라마 주제곡인데 아직도? 일본의 어린 학생들은 무슨 음악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가와시사이드역에 내려서 목적지 도착. 
 

 
미팅도 잘하고,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회의실 모습

 
끝나고 주변 구경도 좀 해보고 싶었는데, 점심을 친구들과 먹기로 해서 급하게 돌아가야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정말 맛있다며 꼭 가야 되는 식당으로 한 곳을 픽했는데, 점심엔 경양식, 저녁엔 프렌치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식당이었다. 구글에서는 '미니멀한 식당'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나도 동의한다. 대략적인 위치는 도쿄역 야에스의 다카라초 부근이다. 
 

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맛집의 경양식.

 
점심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기 줄이 길었는데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다. 음식도 훌륭했다. '믹스후라이'(2,000엔)와 함께 나온 수프(치킨콘소메?)도 좋았고, 커피도 향긋했다. 본 게임인 고로케, 멘치카츠, 에비후라이(새우)와 가키후라이(굴튀김)가 함께 나오는 모둠을 시켰는데, 그중 가키후라이가 최고였다. 세상 감사하게도 일행 중에 굴을 안 먹는다는 녀석이 있어서 그거까지 접수했다. 
 
일행 중에는 믹스후라이에 더해 '계란후라이를 올린 함바그(메다마츠키한바그)'까지 시키기도 했다. 외모와 다르게 최후의 만찬인 것 마냥 잘 먹어서 놀랐다. 일본에서는 '서니사이드업'을 '메다마야키'라고 부르나 보다.
 
마음 한편에서는 현지인만 와야 할 것 같은 식당의 분위기 때문에 내게 서빙된 고로케에 와사비 폭탄을 심어 놓지 않았을까란 의심이 들었다... 몇 년 전, 영국 콘월 어느 펍에서 한국인, 아니, 아시안은 나밖에 없었지만, 내가 시킨 피시앤칩스에 썩은 생선을 튀겨서 줄거란 걱정은 1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어째선지 내가 그들의 바운더리를 침범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음식의 상태에 대해 조금 걱정하고 말았다. 의심해서 미안.


이번에도 꽉 찬 배를 부여잡고(여행만 오면 입맛이 산다) 길거리로 나왔다. 식당에 접한 큰 거리를 따라 걷자 마루노우치 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엔 시간이 약간 부족할 것 같아서 황거를 구경했다. 도쿄에 세 번째, 그중 한 번은 수학여행이었는데도 황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울이나 베이징의 궁궐과는 다르게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니까 더 살아있는 공간의 느낌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다른 입헌군주국인 영국의 버킹엄이랑 비교해도 재밌을 거 같다. 버킹엄은 도로에 둘러 쌓여서 '보고 싶으면 와서 봐'의 느낌이라면 해자에 둘러싸인 황거는 여전히 '들여다보면 안 돼'의 느낌이 들었다.
 

황거 앞에 있던 스타벅스(고쿄가이엔 와다쿠라 분수공원점). 천장이 아주 높았는데 황거 방향으로 통창이 나있는게 인상 깊었다. 그 외에는 그냥 보통 스타벅스와 같았다.

 

 

광장에서 바라본 마루노우치 (마천루?)

 
일본 근현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인 히비야 공원이 바로 옆에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거의 시위 장소로서 등장하는 곳인데 황거와 이렇게 가까운지는 몰랐다. 그 당시 일본인들은 지금과 다르게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낼 줄 알았구나.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인물사진. 계속 저렇게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는 코메디.

 
황거 광장을 걸어 다니면서 뱃속에 생긴 아주 약간의 빈 공간에는 커피를 채우기로 했다. 처음에 본 황거 앞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줄 통창

 


 
시간이 되어 혼자 먼저 호텔에 돌아와 맡겨둔 가방을 찾고 나리타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해 도쿄역으로 갔다. 짐가방 때문에 도쿄역까지 어떻게 갈까 좀 고민했는데, 호텔 앞에 택시가 서 있길래 타버렸다. 런던의 블랙캡과 비슷한 형태의 자동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차 안은 넓고 높아서 허리를 많이 숙이지 않아도 타기 쉬웠다. 
 

 
친절한 기사상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도쿄역에 내렸다. 여기서 또 정신없이 나리타익스프레스 티켓을 사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 3시간 반 전이었다. 
 


 
귀국 편은 KE714로, 오후 8:35분에 나리타를 떠날 거였다. 보딩패스를 받고 면세구역으로 넘어가서 면세점을 쓱 둘러보며 선물로 살 것들을 눈에 담았다. 너무나도 안일한 태도였다...
 
비행기에 타기 전에 씻고 다시 로션을 발라주는 의식을 치른다(물론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는 모두 포기하지만). 보통은 항공사나 페이 라운지가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번에는 페이 라운지를 이용했는데, 아니... 너무 부실해. 샤워는 물론 없고, 음식은 상해푸동공항 페이 라운지 급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쩌면 푸동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바깥에 샤워시설이 있었다. 비용은 30분에 1,050엔. 여기서 동전을 최대한 털어냈다. 비좁은 샤워실에 놀랐지만, 수압은 훌륭했다. 물 온도도 잘 유지 돼서 갑작스런 냉수마찰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잘 씻고, 보습도 충분히 해주고, 산뜻하게 새로 산 유니클로 팬티로 갈아입고 다시 면세점으로 돌아갔다. 
 

비좁아.. 같이 일하는 미국인 아저씨는 못들어 갈거 같다.

 
분명히 기억한다. 도쿄바나나가 면세점 매대에 가득했던 것을. 그런데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를 가던 품절 안내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게다가 8:35분 비행기가 거의 마지막인지 면세점에는 마감 분위기가 맴돌았다. 정신 차리고 '유바리 멜론 스팀케이크'와 '도라에몽 도라야키', '도쿄바나나 딸기케이크'를 샀다. 서울에 돌아왔을 때 모두가 호평한 건 '유바리 멜론 스팀케이크'였다. 
 

도쿄바나나 빼고 많이 샀다.

 
나리타공항 면세점에서 놀란 또 한 가지는 중국인 직원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원래도 이랬나? 체감상 다섯 중 세 명은 중국인이었다. 향수를 사러 갔는데 직원이 중국인이었다. 너무 친절한 분이었다. 과자 살 때도 만다린의 향취가 깔린 일본어로 호객하는 직원도 있었는데 낯설면서 신기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인천이나 김포 면세점에도 중국인 직원이 엄청 엄청 많다. 그냥 세상이 변한 거다. 
 


 
KE714 편의 탑승은 정시에 시작했다. 
처음 타보는 에어버스 A321NEO 기종이었다. 협동체라서 하나의 복도를 두고 좌석은 3:3 배열로 되어있다. 최신기종은 다들 천장이 높게 느껴진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새로운 시트 디자인이었다. 2004년부터 쓰였던 파란색 시트 대신 남색 베이스의 알록달록한 패브릭으로 바뀌었다. 일단은 새로워서 예뻐 보였다. 또 오염되어도 눈에 잘 안 띌 거 같은데 그건 나중에 걱정해도 될 것 같다.

이미지 출처는 대한항공 홈페이지

 
개인 모니터도 아주 크고, 메뉴 선택도 빠릿빠릿하게 잘 됐다. 
 

 
 

비행기에서 탑건을 보는 건 안전 비행을 기원하는 나의 의식이다

 
 


 
안전하게 인천공항에 내려서 차를 타고 집에 왔다. 도쿄 여행 끝. 
 

여행이 끝나고 미처 다 털지 못한 스이카 잔액!!!

 
스이카로 5천 엔 이상은 결제한 거 같다. 다음 여행에는 처음부터 많이(5천 엔 이상) 충전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날, 일을 끝내고 점심 먹으러 가는 중간에 '쇼에이도'라는 인센스 가게가 있어서 잠깐 들렀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인센스집이다. 교토가 본점이었던 거 같은데, 신바시역에서 긴자로 올라가는 길에 도쿄점이 있어서 들렀다. 이번에 산 건 사진 위쪽에 있는 '인센스 트레이'란 제품이다. 
 
침향을 뉘어서 피울 수 있게 해주는 물건으로, 내열성 세라믹 부직포로 만든 트레이라서 안심하고 침향을 즐길 수 있다. 또 재가 떨어지지 않아서 뒷정리하기도 편한 것도 장점이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침향 '덴페이'를 피웠는데 여행의 여운으로 들뜬 마음을 차분히 시켜주었다.
 
가격은 비싸지만 좋은 지출이었다.
 

타쿠바 : 인센스 트레이

 
 
 

>2023년 도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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