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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시안성도 아니고 삼성전자 공장 때문도 아니다.
진시황릉과 그것을 약 2,200년 동안 지켜온 병마용이 없었다면 21세기 시안은 그저그런 중국의 신흥 도시였을 것이다.

바로 그 장소에 갔다 온 이야기. 두둥.
병마용보다 '지옥 택시'의 기억이 더 강렬하지만, 어쨌든 진시황릉 이야기.


이날이 시안에서 full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하늘은 맑았다. 미세먼지는 여전히 높았다. 아침에 디디 추싱으로 차를 예약하고 조식을 먹었다.
식당에서 본 직원의 이름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이름이 무려 '콜라'. 제대로 된 호텔인데도 용케 이런 이름을 허용해주는구나 싶었다. 하긴, 옛날에 어떤 분(한국인)은 자기 영어 이름을 환타(Fanta)로 짓기도 했었다.

그녀의 이름은 콜라

디디를 타고 진시황릉으로 출발했다. 호텔에서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까지는 55 km 거리로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디디가 없을 때 중국 여행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편하게 창밖 풍경을 즐기며 이동했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잘 풀리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우리 뒤로 지옥의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호텔에서 진시황릉까지

도착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의 정문. 벌써부터 웅장함이 느껴진다.

매표소에서는 '병마용 관람' 또는 '병마용 관람+진시황릉 버스투어'라는 두 가지 코스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 다른 일정이 있던 우리는 아쉽지만 병마용 관람만 하기로 했다. 티켓을 끊고 거대한 입구를 통과하면 광대한 공원 또는 산책로처럼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넓지만 동네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보고 속으로 '잘못 온 게 아닌가?'라고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걱정은 얼마 못 갔다. 저쪽에 보이는 큰 건물에 들어가 어두운 통로에 서자 출토된 병마용이 눈 앞에서 우리를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좌)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정합니다 (우) 드디어 뵙겠습니다 테라코타 아미님

(좌) 광대였나... (우) 말의 생김새도 모두 달랐다

아직 채색이 남아있는 병사. 신발 바닥의 무늬까지 정교하다.

수많은 병마용 조각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듣던 대로 같은 표정이 하나 없었고, 진짜 사람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팔다리 관절의 구부러짐이 대단히 자연스러웠다. 클리셰를 하나 쓰자면, 병사들이 일어서서 움직일 것만 같았다. 다른 박물관이었다면 이 정도의 병마용으로도 신기하게 관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병마용이 잠들었던 현장이다. 조각상 몇개는 겨우 시작인 것이었다.

이런 갱은 세 군데가 공개되어 있었다

잘 정돈된 전시관을 지나니 병마용이 발굴된 현장이 나타났다. 두둥.

왠지 사진으로 보니까 좁아 보이는데, 이곳의 테두리를 따라 점점이 보이는 게 관람객들이다.
관람객이 정말 많았다. 수학여행 온 중국 학생들, 한국, 일본은 물론 유럽 곳곳과 미국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2021년)는 그렇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지만, 이때까지는 그랬다.
부디 그런 풍경이 역사로 남지 않길 바란다.

비행기 격납고 같았던 1호갱. Pit No. 1 / 유러피언 단체 관광객이 넘쳐났다. 
아직도 발굴 중이라는 병마용. 정작 이 병마용은 진시황릉을 변두리에 설치되었을 뿐이다 / 아이폰 앨범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진시황릉이라고 분류한다

충분히 구경하지 못한 기분이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병마용을 구경하고 출구로 나오니 큰길까지 나가는 길을 따라 상점가가 이어졌다. 식당은 기본이고, 카페와 기념품 집도 빠질 수 없다. 한 집에서 병마용 메탈 피규어와 자석을 샀다. 너무 조금 사서 주인아줌마의 표정이 밝진 않았다.

진시황릉에서 미국을 맛봤다.

상점가는 처음 나왔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정문에서 끝났다.

우리를 따라왔던 지옥의 그림자는 여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디디를 호출했는데 아무리 불러봐도 응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디디가 말이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다른 현지인들은 디디 차를 바로바로 잡던데, 우리 호출에는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가장 비싼 서비스를 선택해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디디로 움직였던 터라 교통편에 대해 사전조사를 하지 않았던 터라 당혹스러웠다.

그렇다고 도심지도 아닌 이곳은 택시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망했다고 생각하던 순간, 멀리서 작은 택시가 보였다. 털털 거리며 움직이던 택시. 일단 문을 열고 탑승했다. 문은 잘 닫히지 않았다. 에어컨이 없는지 모든 창문을 열고 있었다. 안전벨트는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 시트나 차량 상태는 말할 것도 없다. 지도로 행선지를 알려주자 택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해에서 가짜 택시도 체험했던 터라 조금 무서웠다.

기사는 젊은 남자로 쾌활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저기는 양귀비의 무덤이야'라는 둥 도로 주변의 유명 장소를 설명해주었다. 택시는 이윽고 고속도로에 드러 섰다. 우리는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을 꼭 잡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기사가 열심히 속도를 냈지만 차는 80~90km/h를 넘기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택시는 호텔에 도착했다. 어째선지 요금은 우리 돈으로 2~3만 원 정도로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당시엔 요금보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기사는 다시 쾌활하게 웃으며 차를 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그 길로 진시황릉으로 갔을까, 다른 승객을 태웠을까.


계획에도 없던 시안 여행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음식과 체험과 역사가 적절히 섞여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으로 남았다. 코로나 때문인지 TV에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세계 테마 기행'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보게 된다. 거기서 시안이 나오면 우리는 그때 안 갔으면 평생 못 갔을 거 같다는 얘기를 나눈다. 다행이다. 다시 여행 다닐 수 있는 시절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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