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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외국사람이 자기 시선에서 한국에 대해 말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것은 약간 뭐랄까,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하는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주는 것 같다. 과격한 책으로는 중딩때 읽은 '발칙한 한국학'이란 책이 있었고, 고 조경철 박사가 번역했던 퍼시벌 로웰의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이란 책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는 게 신선하다.

 

"옥스퍼드 출신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란 수식어가 쓰인 띠지가 더없이 한국적이다.


이번에 읽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은 (물론) 언젠가 우연히 한 서점의 매대에서 집었던 책이다. 그때는 그냥 '다음에 읽어봐야지'하며 내려놓았었는데, 이번에 불현듯 생각이 나서 바로 사게 되었다. (그때부터 벌써 2년이나 지났다는게 믿기 힘들지만...) 저자는 다니엘 튜더란 영국인으로, 2002년 월드컵때 축구를 보러 처음에 한국에 왔다고 하며, 이후에 2010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서 다시 돌아왔다. 이 저자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전에 이곳에서도 몇번 언급했던 더부쓰의 창업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더부쓰는 여전히 종종 찾고 있는 맥주집이다. 맥주 말이 나와서 보니까 이 책은 더부쓰의 Pilsner같은 맛이었다. 

 

먼저 이 책은 저자가 외국 여러나라에서 서점에 들렀을 때, 일본이나 중국을 소개하는 책들은 많은데 한국에 대한 것은 없어서 아쉬워하다가 직접 쓰게 되었다고 한다. 즉,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고자 쓴 것이다. 원제는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로, 이 책이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마존에서 이 책을 찾아보니 꽤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한국의 고대사, 현대사와 정치, 문화, 일상, 여성과 LGBT 등 여러가지 토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에 사업하러 오는 외국인이 있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책의 성격상 한국인에게 특별하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글 자체의 흡인력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는 저자 본인의 글솜씨도 뛰어나지만, 번역가의 실력이 정말 탁월하다. 영어가 원문인 책을 이렇게 물 흐르듯 읽었던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다.

 

이 책이 나에게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어쩌면 평소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나라는 언제나 숫자에 집착한다는 점과 정치에서 여야가 없다는 점이 그것인데, 특히 숫자에 대한 집착은 대단해서 세계경제 몇 위국, GDP 몇 위, 몇 퍼센트 등 사람들의 생활과 아무 상관 없는 수치들에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 당장 어제 석간 뉴스만 보더라도 최경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경제 성장률 3%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단다. 그 수치는 사실 나와 당신의 일상에 큰 관계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이 책에서 제기된 한국사회의 몇 가지 '문제점'들은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도 다루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문제들을 이미 인지한 한국사람은 많지만 행동하는 한국사람이 없는 현실이다. 한 20대가 당장 자기가 처한 어려움을 기성세대 탓으로 돌리다가, 해가 저물면 '먹고 죽자'는 그들의 썩은 음주문화에 취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서울의 20대는 기성세대가 되어간다.


얼마 전에는 다니엘 튜더의 새로운 책이 발간되었다고 한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란 제목으로 한국정치에 대해 논한다고 알고 있다. 현재는 런던에서 Byline이라는 크라우드펀딩 언론사를 차렸다고 알고 있었는데, 신간을 내는 걸 보니 정말 부지런 한가보다.

 

한국말도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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