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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만났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사무라이』는 17세기 초, 일본에서 태평양을 건너 로마까지 가야했던 한 하급 무사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는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데, 일본에서 태평양을 건넜다는 픽션같은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하세쿠라 쓰네나가는 어느 산골 마을의 평범한 무사였으나, 빼앗긴 가문의 영지를 되찾아주겠다는 번주 이시카와의 명령에 따라 서양으로 떠나는 사절단의 수장이 된다. 그는 약 4년여의 시간 동안 멕시코를 거쳐 스페인과 로마에 이르는 고난의 바닷길을 건넌다. 오로지 가문의 부흥이라는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마지못해 세례까지 받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 주군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신앙에 대한 박해와 가문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운명과 마주한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작가는 문학적 주제를 위해 몇 가지 설정을 변주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번주의 이름은 '이시카'이지만, 실제 역사 속 모델은 센다이 번의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다. 여정의 기간도 실제는 7년이었다 한다.
 


["세계는 넓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은 책의 뒷표지에 크게 쓰여진 문장이다. 처음에 봤을 때, 무슨 상황일지 궁금했다가, 본문에서 마주쳤을 때는 정말 그 상황을 절절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넓은 세계를 확인하러 떠난 길의 끝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신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비정한 이해타산과 배신이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순간, 인간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스포 경고 ⬇️⬇️ )
[ "이제부터는, 저분이 당신을 모실 것입니다."]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종자 요조와 주인공 하세쿠라의 짧은 대화다. 죽음의 예감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나는 하세쿠라에게 요조는 말한다.

"이제부터는, 저분(あの方)이 당신을 모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세쿠라는 고개를 끄덕임으로 화답한다. 그것이 사무라이와 평생을 함께한 종자 사이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는 평생 가문의 명예와 번주의 명령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고, 그 명령 때문에 마지못해 세례를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신앙은 '가짜'였고 그의 여정은 '실패'였다.

하지만 엔도 슈사쿠는 묻는다. 신은 승리자의 환호 속에 있는가, 아니면 패배한 자의 눈물 곁에 있는가. 하세쿠라가 마지막에 긍정한 '저분'은 유럽 대성당의 황금빛 예수가 아니라, 자신처럼 비참하게 버림받고 흙길을 걷는 초라한 신의 얼굴이었다. 그 끄덕임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며 신의 손을 잡은, 가장 인간적인 구원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무리]

엔도 슈사쿠를 처음 접한 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16년 작 『사일런스 』 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마음이 움직였던 그 영화의 원작이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작품을 더 읽고 싶어서 이 책 『 사무라이 』 를 찾았다. 이 소설도 영화화 되면 어떨까도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무라이>를 읽으며 조선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떠올랐다. 가톨릭과 바다라는 키워드 때문이었으리라. 김대건 신부가 열정과 도전으로 신앙을 증명했다면, 하세쿠라는 '실패'와 '인내'를 통해 끝내 신앙의 본질을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좋다. 또 다른 수작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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