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DEMOCRACY DELAYED)'는 지난번 다루었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의 저자인 다니엘 튜더의 최신작이다. 지난번 책에서는 한국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최근의 한국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책의 문장들이 외국인을 향해있다면, 이번에는 한국인을 향해 있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민주당이 망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야당세력이 지리멸렬한 것 같고, 그러한 현상이 초래할 결과들에 대해 생각해볼 장을 만든다. 그 외에 또 한국의 경제, 언론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데,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가 얕지 않다. 그의 생각은 절제된 문장으로 예리하게 쓰여있다. 비교적 신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빨리빨리'인 이 나라에서 몇몇 논점들은 벌써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중심 주제는 유효해 보인다.
이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은, "왜 이런 얘길 서양인에게 들어야 되지?"이다. 서양인이 한국에 대해 뭘 알겠냐고 불만스럽게 묻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정말 이런 이야기를 '한국인'에게 듣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요즘 보면, 한국은 생각 없이 사는 게 미덕이 된 사회. 성향 없이 사는 게 도리가 된 사회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사회는 자기성찰의 기능마저 상실한 게 아닌가 싶다.
작가인 다니엘 튜더는 한국사람들이 외국인(특히 서양인)의 생각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인다고 말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지 마세요'라고 서두에서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사람들이 외국인들의 생각에 그러한 관심을 보이는 건 어쩌면 한국인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시다시피 이제는 한국사람들도 서양인이 생각하는 한국이야기에 무조건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만큼 촌스럽지 않다.
물론 한국에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정치적인 맥락에서 좀 한쪽으로 편향적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래서, 솔직히 듣기 불편하다. 경제적인 맥락에서는 사실 차이가 없다. 빨강이던 파랑이던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 달랐더라도 결국엔 똑같아진다. 중간 즈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희소한 것 같다. 어쩌면 조선일보와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종북 빨갱이가 된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면 어떤 딱지를 받던 상관없는데, 그 이유는 종북 빨갱이 딱지는 한국인 몸에만 맞게 가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을 지키면서 양쪽을 찌르고 있는 다니엘 튜더의 문장들이 지금 이곳에서 더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체제 수호가 레종데르트라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조선일보가 종북 빨갱이보다 위험한 거 아니야?
이 책의 부제는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인데, '서양 좌파'라는 표현이 탄생한 경우가 코미디다. 어느 날 튜더가 트위터로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올리자 어떤 한국인 트위터가 '서양 좌파는 물러가라'라는 내용으로 욕을 했다는 것이다. 튜더의 경제적 성향은 좀 왼쪽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노동당(영국) 지지자라고 몇 차례나 밝혔고, 소득 분배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북한 정권에 대해선 비판을 아끼지 않는데, 이럴때 그는 어느 쪽에 서야 하는 것일까?? 그 한국인 트위터가 '좌파'라고 하면서 어떤 의미를 내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지타운대학에서 말하는 '좌파'는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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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 만하다. 책이 일단 두껍지 않고, 한글 문장도 눈에 매끄럽게 들어온다. 다른 시각에서 '지금'이란 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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