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의 여운을 조금 더 붙잡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처음 봤을 땐 별다른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저 그런 책 중에 하나처럼 보여서, 굳이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런 말장난 같은 제목으로 뭘 말하려는 걸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강력히 추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결국 나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은 루루 밀러라는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의 삶을 좇으며 시작한다. 19세기말, 수많은 물고기를 분류하고 이름 붙인 박물학자 (한반도까지 물고기를 찾아왔었다). 그는 그렇게 세상의 혼돈에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의 대지진으로 그의 표본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이름표가 흩어졌을 때에도 조던은 포기하지 않았다. 바늘에 실을 꿰어 각 표본에 이름표를 직접 꿰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장면에서 나는 그에게 존경심이 싹텄다. 그의 애처로운 집착은 세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끈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지점부터 책의 방향이 바뀐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전기가 아니었다. 저자는 조던의 집착과 광기를 좇으면서, 점점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다. ‘이름 붙이기’라는 행위, ‘구분하기’라는 시도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동시에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생물군조차 진화적으로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읽는 내내 나도 내 마음속 질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는 어떤 이름들을 붙이며 세상을 이해해 왔을까. 그리고 그 이름표를 두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는 않았을까.
뜻밖의 결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 또한 이 책을 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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