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부동산 개발을 위해 철거를 기다리는 남산의 힐튼 호텔.
서울의 여러 특급 호텔 중에서도 특별해 보이는 곳이었다. 인상적인 건물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나는 웅장한 로비가 좋았고, 그곳에 서있던 구리로 마감한 기둥과 천연 대리석도 기억에 남는다. 혹시라도 그곳을 철거하면서 나오는 트래버틴 대리석이나 동판을 가구로 만들어내면 갖고 싶을 정도다.
돌이켜보면 이 호텔의 사람들도 좀 남달랐다. 캐나다인 동료는 이들에게 'can do attitude'가 있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몇 년 전 서울에서 급성 염증으로 죽을 뻔한 거구의 영국인 동료를 살려낸 데는 남산 힐튼 직원들의 도움이 주요했다. 이후 이 동료들은 서울에 올 때마다 남산의 힐튼에서 머물렀다.
얼마 전 아일랜드 출장에서 만난 한 미국인 신사는 90년대 초부터 한국에 출장을 올 때마다 '서울역 앞에 있는 힐튼 호텔'에 머물렀다고 했다. 나는 그 호텔이 이제 문 닫아서 없어질 거라고 했고, 그는 입을 떡 벌리며 No way를 외치면서 너무 아쉽다고 했다.
여러 사람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철거될 이 호텔은, 한국인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 첫 호텔 건물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자료를 기초로 건물을 설계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 '힐튼과 김종성'이란 책은 이러한 뒷 이야기가 담겨있다.
곧 사라질 건물의 시작과 끝을 건축가 김종성, 그와 함께 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 호텔에 몸 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이 급하게 나왔는지 안타깝게도 오탈자가 많은 점은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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