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어서...엉망입니다)
굿모닝 뉴욕?
아주 이른 아침에 깼다. 겨우 빌딩 사이사이로 아침햇살이 파고드는 시간이었다.
사실 여태껏 시차란 것을 잘 모르고 살아왔는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뉴욕과 서울 사이의 13시간 차이가 유달리 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것이 나이 탓...?
미국사람들이 나보고 스무 살보다도 어려보인다던데... 나이탓이라니, 인정할 수 없다.
일기예보에서 이날 정오 쯤부터 비가 온다고 하여, 자유의 여신상처럼 야외 관광지에 가려고 했던 계획을 갈아엎고,
박물관/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보내기로 했다.
예상루트는: 호텔-자연사박물관 via 센트럴파크-구겐하임박물관-메트로폴리탄 아트 뮤지엄-MoMA-호텔-밤문화.
(뭣도 모르고 짠 계획이었음을 몇시간 후 깨닫게 된다)
출근하는 뉴요커들의 행렬에 몸을 맡기고 그들과 발걸음 속도를 맞췄다.
그들의 보행속도가 정말 남달랐다. 러닝머신에서 6~7 단계쯤 되는 속도다.
뉴요커처럼 걸어다니기. 이것도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 자꾸만 마천루의 끝을 향해 하늘로 오르는 시선을 정면에 맞춰야 한다.
길을 걷다가 시선을 두리번 거리며 천천히 가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관광객일 것이다.
실제 뉴요커가 말하길, 현지인들은 여행객들을 상당히 싫어한다고 한다.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삭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관광객처럼 보이면 안되는 진짜 이유는 호객행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45번가를 가다가 파크 에비뉴로 방향을 바꿔 가다가 59번가로 들어서자 The Plaza (플라자호텔)이 나왔다.
이곳은 '나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이 머물던 호텔로 유명하기도 하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자 센트럴파크가 나타났다.
센트럴 파크로 조금 들어가서 뒤를 돌아보자 이런 풍경이 나타났다. 매우 뉴욕스러운 풍경.
센트럴파크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꽤 거대한 공원이다. 그것도 인공적인 조경으로 꾸며진 곳이 아니라 숲을 자연상태 그대로보존한 도심속 야생공간이다. 공원에 다람쥐같은 작은 동물들도 많고 물에는 오리, 거위?도 많이 보였다.
센트럴파크의 호수(The Lake)를 지나자 거대한 붉은 별돌 건물이 나타났다. 바로 미국자연사박물관. 이름은 자연사(Natural History)지만, 동식물, 인류부터 문명과 우주까지. 그냥 이 지구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다.
여기는 옛날 77번가쪽 입구라고 한다. (심시티란 게임에서는 여기가 건물의 입구로...)
지금은 여기가 입구다.
거대한 동상은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와 아메리칸인디언 두 명이 함께 서있다. 서양식 위선을 가득 머금은 구도와 의미 품은 동상. 하지만 웅장한 입구 앞에 주변 도로를 압도하는 동상은 누구라도 쳐다보게 된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가방검사와 메탈디텍터 검사를 하게 된다 (미국 관광지는 이런 검사를 거의 다 하는 것 같다).
이날 내 앞으로 중고등학생 단체가 먼저 입장했는데, 그들의 가방에서 잭나이프가 계속 나와 바구니가 수북해졌다 (농담 아니다, 게다가 이때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난도질사건이 있어서 아주 약간 신경이 쓰였다).
내 차례가 되어 경비원한테 '애들이 저런 걸 도대체 왜 들고 오는 거에요?'라고 묻자 모르겠다고 한다. 물어본 나도 바보다.
나는 New York Pass란 걸 가지고 있어서 매표소 줄은 거의 안 서고, 바로 티켓을 받아서 들어갔다. 근데 만약에 누가 이 Pass를 구매하고 싶다고, 어떻냐고 묻는다면 사지 말도록 말릴거다. 이 Pass를 갖는 것은 여행의 성격이 모험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체력이 넘쳐나고 밤문화 체험을 다 포기할 수 있으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자세한 건 나중에...?
입구부터 거대한 공룡의 뼈가 천장 끝까지 서서 '여기는 이런 곳이다'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해양생물관에 들어가면 거대한 홀에 엄청나게 거대한 흰수염고래의 모형이 천장에 걸려있다. 사진으로는 그 위용이 느껴지지 않는데 실제로 봤을 땐 계속 저 모형만 보고 있었다. 진짜 거대하다. 미국의 스케일이다. 중국의 그것과는 어딘가 크게 다르다.
이 박물관은 또 엄청나게 많은 동물 종의 박제를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처음엔 인형인줄 알고 무심코 구경하다가 뒤늦게 박제라고 알게되었다. 동물들 모두 당장이라도 유리창을 뚫을 표정이다.
동물의 박제와 그들의 서식지가 자세히 재현되어 함께 전시된다.
먼훗날 아이가 생긴다면 과학책 전집보다 여기 한 번 가는 게 나을 듯 하다.
맘모스
정신차리고 시계를 보자 어느새 3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마지막 전시관은 거의 건너뛰고 밖으로 나와서 구겐하임을 향해 갔다.
다시 센트럴파크로...
이 저수지를 가로지르면 바로 구겐하임이다.
정확한 이름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솔로몬 R. 구겐하임 박물관).
특이한 형태의 미술관으로 무려 1959년에 완공되었다.
오늘도 이 부근의 어느 빌딩보다 모던해 보이는 곳이 지어진지 반백년이 넘었다. 대단.
내 짧은미술지식으로 알고 있기로는, 이곳은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과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내가 갔을 때는 이탈리안 퓨처리즘(Futurism; 미래파) 작품들이 나선형 복도를 따라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촬영금지.
20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기계의 힘으로 불가능이 없을 것 같았던 인간의 자신감이 가득 담긴 작품들은 재밌었다.
당시 사람들의 유토피아가 지금은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렸다던지(예를 들어 아파트), 당시엔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내게 인간이 한 치 앞도 못보는 존재란 걸 강조하여 자연과 시간 앞에 겸손해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 장소로 서둘러 이동했다.
또 거대한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난 이곳을 예술의전당쯤으로 얏보고 있었던 것 같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박물관인데...). 여기서 내 다리는 걸레가 되고 만다.
아무튼 엄청난 규모에 압되되며 입장하게 된다.
박물관 지도를 받고 동선을 짜봤다. 견적이 안나오는 동선이었다.
1880년에 지어져 지속적으로 확장된 이 박물관은, 건물 구석구석 온갖 미술작품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그것들을 흝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데, 그렇게 보기에는 작품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입구 오른편으로 입장했다. 그곳은 이집트, 고대 그리스로마 등등 고대미술관이 있었다.
그 위로 중세서양미술, 동양미술, 조각, 어딘가의 방, 홀을 통채로 옮겨놓은 전시관도 있고...
여기서 스타벅스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사이렌?
안녕하세요? 빈센트 반 고흐
너무 유명한 쇠라(georges seurat)
안녕하세요 모네, 내가 좋아하는 그림.
로뎅까지.
박물관 폐관까지 30분쯤 남았을때 밖으로 나왔다. 다리에 감각이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 박물관에서 산 우산을 쓰고 5번가를 내려왔다. 비는 점점 더 많이 왔다.
전의를 상실하고 호텔로 돌아가게 된다.
원래 계획했던 MoMA는 폐관시간이 지나서 다음날로 미뤘다.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애플스토어. 몇 번은 봤는데 한 번도 안 갔다.
뉴욕의 애플스토어. 조금 가보고 싶었는데 막상 눈앞에 있으니까 안가게 된...
이런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면서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그런 규모의 미술관이 민간차원에서 시작되었고 또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단 것이 신기했다. 한국에서 그런 그림이 있다면 자기 집에 모셔두려고 노력할텐데 말이다. 옛 미국의 이런 앞선 시민의식은 참 중요하게 생각해 볼 부분같다. 아마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 도시를,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게 아닐까?
특히 이 글을 작성중인 지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하루만에 뉴욕이 질리려고 했는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모네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뉴욕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풍요로운 환경 속에 사는지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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