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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이란 책을 읽었다. 부제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 지은이는 "에두아르도 포터(Eduardo Porter)"다. 저자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인생의 여러 요소가 어떻게 가격/비용에 영향을 받는지 논한다. 상경계열을 공부하고도 행동경제학은 사실 좀 생소한 분야였다. 그렇지만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전제하는 기존 경제학에 반해 인간을 비이성적으로 전제하는 행동경제학은 더 현실감 있고, 피부로 흥미로웠다.


책의 프롤로그대로 '가격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핸드폰, 컴퓨터, 책과 가구, 집,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잠옷과 드로즈를 포함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는 가격이 있다. 저자는 그러한 사물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intangible), 예를 들어 생명과 노동, 공짜와 신앙, 문화와 미래, 또 여성의 가격까지 사회적으로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들의 가격까지도 파고든다. 여기서 '가격'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사물의 가격은 가령 이런 것이다. 왜 비교적 낭만적으로 평가된 레스토랑독신자에게 어울린다고 평가된 곳에 비해 전채요리와 후식의 가격이 각각 6.9퍼센트와 14.5퍼센트 더 높게 책정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연인이 레스토랑에 더 머물면서 전채와 후식까지 주문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레스토랑은 '낭만적' 품목에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웠다.


작가는 인간의 행복이 소득 수준에 따라 변한다고 주장한다. 즉,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 같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틀리지 않다. 오히려 진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이 주택, 식량, 물, 에너지 등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의 증가가 한계에 다다른다는 점도 빼먹지 않았다. 한 멕시코 빈민 지역에서 바닥에 별다른 마감 없이 흙바닥에서 생활하는 집들에 시멘트 바닥을 깔자 행복도가 올라갔다. 아마 모 기업 회장이 주차장에 슈퍼카 한 대를 더 들이는 것보다, 흙바닥에 시멘트를 깔아 가족의 건강상태가 개선에서 느끼는 행복이 훨씬 클 것이다. 또,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충분한 여가시간을 누리지 못했을 때 행복도가 하락하는 반면, 지속적인 성생활, 낮은 오염과 범죄율, 결혼 등은 행복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 열거한 것 외에도, 역사적으로 저평가 되었지만 적극적인 사회 진출로 상승한 "여성의 가격", 극단으로 치닫는 빈부격차와 공정한 임금에 대한 "노동의 가격",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공짜의 가격", 사회 체제의 가격과 동물의 권리 등에 대한 "문화의 가격", 종교가 사회와 개인에게 주는 득과 실에 대한 "신앙의 가격"을 설명한다.

  "종교를 갖게 되는 개별적 과정들은 다양한 인자에 의해 결정된다. 신앙인들은 보통 자기 믿음으로 인해 무엇을 버리게 됐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을 대신해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공동체의 종교적 신념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지만 신앙에 따른 혜택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보험을 위해서는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듯이 종교 단체의 혜택은 구성원들이 들이는 시간과 돈, 노력에 달려 있다. 기부자에게 상당한 도덕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는 회비를 걷는 데 대단히 능숙하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가격"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의 변화 없이는 비관적이라고 피력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존 과학자, 지식인들의 의견에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고, 이것에 대해 독자들도 함께 고민하도록 끌어들이고 있다.

  "제프리 삭스는 기후 변화를 ‘화학 물질이 일으킨 사고’라고 묘사했다. 우리가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고, 난방 온도를 높이게 되면,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로 인해 대기의 열기가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서서히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고, 결국 자연의 아슬아슬한 균형마저 위협하는 순간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시장 경제의 실패도 자연 파괴의 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온난화 피해로 나타나는 종의 멸종, 토양의 척박화 등은 지구가 인류를 부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는 세계 경제가 자연 자원에 적절한 가격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책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는 또 다른 관점에서 가격/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 한편으론 맨 처음에 언급했던,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경제적 인간이란 가정이 상당히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은 합리적이어서 자신의 욕망을 최선의 방식으로 (낭비 없이 자원을 사용하여) 채운다는 가정인데, 사실 인간의 선택은 비합리적이고, 낭비가 심하다. 예를 들어, 증권브로커와 공장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는 그들의 다른 교육 수준과 노동의 형식을 감안하더라고 지난 2~30년간 터무니없게 커졌고, 결과적으로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시켰다. 이것은 인간이 비합리적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니,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예로, 우리는 콜라 따위의 탄산음료가 몸을 상하게 할 줄 알면서도 
과일 주스나 물 대신 그것을 선택한다. 이 사례는 인간이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극명하게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사례를 비합리적인 독자에게 소개하면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선택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기도 한다.
행동 경제학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 책이었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속도감 있게 완독할 수 있었다 (반면 "왜 도덕인가"는 몇 달이 지나도 끝나지 않고 있다...). 작금의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해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이후의 변화에 대비하고 싶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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