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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은 어두웠고, 낮부터 비가 내렸다. 밤에도 비는 이어졌고, '비가 오는구나' 하며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잠은 얼마 못 가 깨졌다. 수요일 새벽 3시쯤 천둥소리에 깼다.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번개는 고장 난 형광등처럼 계속 이어졌다. 천둥도 이어졌는데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아마 하늘이 무너진다면 그런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천둥 번개는 그렇게 아침까지 이어졌다.

수요일 오전에는 인천에 꼭 갈 일이 있었다. 집(용인)에서 인천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강남에서 인천행 버스를 타는 방법이다. 집을 나섰다. 바로 앞 공원에는 어디선가 토사가 떠밀려와 있었고, 물은 도로를 따라 강이 되었다. 교차로 한가운데 쌓인 돌더미는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강남행 버스는 왔다.

평소보다 두 배정도 걸려 버스는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서울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빗줄기가 점점 더 강해졌다. 버스 앞유리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새 때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판교부터 밀렸고, 이때까지만해도 그저 비가 많이 와서 막히는 것으로 알았다.

오늘(목) 뉴시스에서 퍼온 사진. 어제보다 많이 복구되었다.


버스가 서울쪽으로 들어갈수록 창 밖 풍경이 달라졌다. 우면산은 무너져 있었고, 예술의 전당 부근도 토사가 쏟아져 있었다. 

이때 우면산 터널 쪽에 산사태가 일어나 차 한 대가 매몰됐다는 뉴스를 들었다(다행히 매몰된 차는 없었다). 양재천도 범람 직전이었고 (나중에 결국 범람했다) 그곳을 지나던 차들도 폐차 직전이었다. 이쪽 고속도로도 침수가 심해 차들이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침수가 심했다.

약 한 시간정도 걸려 반포IC를 나갔다. 일반도로는 심각하게 침수되어 있었다. 강남대로는 마비상태였다. 영화 '투머로우'에 이런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버스가 왜 안 움직이냐며 불평하던 중 앞에서 쓰나미가 덮치는 장면이다. 꼭 그 모양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버스에서 참지 못한 사람들은 도로 위에 내렸고,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발목 위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갔다.



태어나서 물이 이처럼 두려웠던 적이 있었을까. 쉼 없이 쏟아지는 비는 공포였다. 은행 ATM에 들어가 인천행 버스를 기다렸다. 인천에서의 약속을 늦추자고 연락했다. 반응은 냉랭했다. 두 시간을 기다려 겨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타기는 했지만 다른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았다. 교차로에는 버려진 BMW와 벤츠가 길을 막고 있었다. 일반 승용차는 사실 지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인천에서 연락이 왔다. 그냥 돌아가라고. 조금 열 받는 상황이었지만, 폭우가 식혀주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집을 나선지 8시간 만에 돌아갈 수 있었다.

대단했다. 약속의 의미로 무지개를 보여줬다더니, 이번 '물폭탄'으로 하루 만에 50명 이상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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