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아는 어휘 속에서 생각한다. 우리 생각은 우리가 아는 어휘 속에 갇혀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2차원에 얽매인 우리의 어휘가 문장이 되고, 문장은 시간과 흐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모든 문장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데, 우리는 시공간에도 그렇게 시작과 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왼쪽에서 시작된 문장은 오른쪽에서 끝나고, 오른쪽에서 시작된 문장은 왼쪽에서 끝난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이고, 우주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시작하는 문장은 상상할 수 없다.
이 영화, 컨택트(Arrival)에서는 이러한 사고를 살짝 건드리고 있다, 마치 고요한 연못속에서 갑자기 생겨난 물결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 물결은 점점 파도가 되어간다. 사실 컨택트의 포스터와 트레일러는 이 또한 ‘보통’ 외계인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영화. 막상 관람하고 났을 때, 영화는 파도처럼 다가왔다. 그 파도가 남긴 것은, 생각의 한계와 그 다음 단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견고한 문을 살짝 열어본 듯한 기분이었다. 인간이 쓰는 언어와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인간의 언어에 갇힌 우주의 시공간도 자유를 얻게 될까?
컨택트는 외계인을 주제로 한 영화이지만, 어쩌면 외계인은 그저 질문을 전달하는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표현된 외계 우주선과 외계인 그리고 미니멀한 미쟝센. 나는 외계인의 촉수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되었다. 인터스텔라가 과학책같은 영화라면 컨택트는 두고두고 읽고 싶은 단편소설 같다(실제로 원작은 단편소설이다). 영화가 끝난 직후 작은 물결 같은 이 질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도처럼 머릿속을 강타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별이 다섯 개.
이번에도 영화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키는데 성공한 한국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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