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로그] 아타쿠가와 류노스케 X 청춘 / 아타쿠가와 류노스케 (최고은 역)
단편에는 독특한 힘이 있다. 짧지만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줄거리에서 받은 인상은 확실히 남는다. 어렸을 때 잠깐 스쳐갔으나 얼굴과 이름이 모두 잊혀진 이성처럼.
이번 단편집은 비행기에서 첫 장을 넘겼다. 그중 하나가 ‘귤’이란 단편이었다. 차가운 비행기 공기가 따뜻해지는 느낌의 짧고 조용한 이야기였다. 바로 페이지를 넘기면 여운이 사라질까 봐 그대로 책을 덮고 조금 앉아있었다.
‘귤’은 이제 막 요코스카를 떠나려는 열차에 앉아 있는 주인공이 허둥지둥 열차에 오르는 소녀를 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낡은 옷차림과 눈에 띄는 행동에 대해 작품 속 화자는 불쾌감과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나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아무렇지 않게 동조하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일상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나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탔을 때 처럼.
그런 불편함이 쌓여가는데, 소녀의 돌발행동은 여기에 하나를 더 얹는다. 소녀는 터널 속에서 열차의 창문을 열어버린다. 이윽고 터널 속 검댕이 가득 담긴 바람이 열차 속에 빨려 들어온다. 여기서 주인공의 짜증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터널을 빠져나온 열차가 어느 마을을 지날 때, 창문의 소녀를 발견한 소년 셋이 뜻 모를 함성을 질렀고, <소녀는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무언가를 하늘로 던진다. 대여섯 개의 귤이, 건널목 아래에서 손을 흔들던 세 명의 어린 소년들을 향해 흩날린다. 붉은 뺨을 가진 아이들. 소녀는, 아마도 고용살이를 가기 전,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동생들에게 자신의 품에서 아껴두었던 귤을 던진 것이다.>
이 짧은 장면은 주인공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불쾌감과 경멸이 따뜻함으로 뒤바뀐다. 소녀도, 저자도 더 이상의 설명은 없다. 그렇지만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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